[공존칼럼] 지식인의 책임과 정치적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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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지식인의 책임과 정치적 참여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04.2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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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구글
사진=구글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전직 정치인 출신이 한 말이다. 어용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자나 권력 기관에 영합하며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스스로 지식인이라 일컫는 사람이 어용 지식인을 자처한다면 어떤 정치적 처세를 하겠다는 것인지 능히 짐작이 간다. 어용 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지성의 무덤이요, 지식인의 종말을 고하는 것 아닌가.

이 시대 지식인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한국 사회에 지성과 도덕적 윤리에 충실한 지식인이 현존하기는 한가’라는 의문이 먼저 든다. 공공영역에서 무책임하며 도덕적으로 오류를 범하는 이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고급 지식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 특징 중 한 가지는 치열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지성적 담론이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추었다. 지식인 부류에 속하는 이들이 정치적 참여를 앞세워 지향점이 다른 상대를 향한 질시와 힐난만으로 담론을 대체하고 있다.

지식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도 근래 들어 정의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모호해졌다. 2000년 이전 산업화·민주화로 이어지던 시기,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참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그러나 오늘날 이르러 지식인의 사회 참여와 역할은 희미해졌다. 아니, 어쩌면 지식인의 책임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은 세태인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지식인이란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공적인 참여와 활동을 담당할 때 그렇게 칭한다. 지식인은 문인, 철학자, 사상가, 대학교수 등 공적 담론을 이끌어 나가는 이들이다. 과거 혼란한 시절 대중들은 지식인들을 사회의 길잡이로 삼아 한 시기를 헤쳐 나가기도 했다. 지식인들의 숙명이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하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책임윤리와 신념윤리 사이에 갈등하며 참여해왔다.

지식인의 덕목은 이성적이고 도덕적 균형 감각을 갖춘 독립된 파수꾼 역할에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지성계는 도덕적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양극화된 정치문화는 좌파와 우파의 갈등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강단 지식인들이 이제는 SNS 채널에서 활약하며 선과 악을 이분법으로 나눈다. 내 편이면 옳은 선, 반대 편은 그른 악으로 규정하는 식이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국면에서 소위 지식인 그룹의 진영논리는 극심했다. 이들은 기이할 정도로 당파적 편향성을 띄고 있다.

예컨대 평생을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시인이기도 한 여류 문인의 지역감정 조장은 너무나 무책임한 행태였다. 당사자인 김 모 시인은 故 노무현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이고 팬클럽 원년 회원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일관된 정치적 신념과 선택에 대해서는 존중한다.

그러나 그는 4·15 총선 결과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특정 정당과 지역으로 나뉜 것을 가리켜 한 쪽 편만 들며 상대편을 폄하하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노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다면서 노 대통령이 내세웠던 지역갈등 극복 슬로건 ‘동서통합’의 정신을 망각한 행위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 해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지식인 스스로가 나서서 케케묵은 지역갈등 망령을 되살리는 것은 심히 적절치 못하다. 지식인이라면 한쪽만의 진실을 말해선 안된다. 반대편의 위선에 대해 말하려면 자기편의 위선도 말해야 한다. 그것이 이성에 바탕을 둔 지성인이 지녀야 할 도덕적 의무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최정예 지식인들이 SNS를 이용해 쏟아내는 정치적 발언은 살벌하기 짝이 없다. 앞서 말한 자칭 어용 지식인과 대학교수인 김 모 씨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범죄 의혹에 대해 전부 ‘검찰의 모함이요, 언론의 망나니짓’이라 연일 성토한다. 친 정부 편향적 미디어의 주장만 받아들이고 옹호하며 SNS에 공유한다. 이런 지식인이 강단에서 윤리와 문명사를 가르친다.

서울의 모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며 SNS에서 많은 수의 팔로워를 가진 김 모 교수를 보자. 그의 SNS 포스팅 내용은 정치적 성향이 다른 편을 향해 엄청난 적개심과 공격을 가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모 종합편성방송채널 방송사에 대한 사업자 재승인 반대까지 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거짓과 막말의 진원지는 흉기이자 폐기가 답”이라는 말로 지지자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지식인의 역할이 SNS에서 선동적 문구로 크나큰 위력을 발휘하는 현실이다. 추종자들은 SNS에서 더욱 강화된 응집력으로 매스컴 지식인들과 상호작용을 발휘하며 여론을 주도한다.

가히 지식인들에게 정치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서 도덕적·지성적으로 냉정한 평론과 진지한 토론을 찾아볼 수 없는 세태다. 이제는 전통적인 관점의 지식인은 사라져가는 시대가 아닌가 한다.

현대 지식인은 ‘메가 인플루언서(Mega-Influencer)’로 형태로 대체된다. 교수, 문인, 철학자 등 인문학 지식인들은 이 역할에 충실하다. 친 정부 성향의 메가 인플루언서들은 SNS 상에서 ‘마이크로 인플루언서(Micro-Influencer)’들과 조응하며 영향력을 확대한다. 여기에 소위 ‘셀럽(Celeb)’이라 불리는 집단이 지식인 대열에 가세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성적이고 깊은 사유를 갖춘 지성인들은 사라지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자, 정치평론가로 『지식인의 아편』을 쓴 레몽 아롱의 명언이 떠오른다. “정치란 선악의 투쟁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의 투쟁은 더욱 아니다. 정치란 좀 더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선택일 뿐이다. 정치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한국 사회는 중요한 쟁점마다 선과 악 이분법으로 나뉘어 갈등과 대립을 잇고 있다. 지식인의 종말은 인본주의적인 가치도 동시에 사라짐을 뜻하는 게 아닐까. 역사는 당대에 평가 받지 않는다. 현재 지식인들은 다음 세대에 평가될 것이다. 다음 세대는 지금의 한국 사회와 지식인들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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