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농인의 현실 무시한 KT '마음을 담다'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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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농인의 현실 무시한 KT '마음을 담다' 광고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4.2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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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마음을 담다' 광고. 사진=광고 캡처
KT '마음을 담다' 광고. 사진=광고 캡처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쪽 인간일 뿐이다." 

이 말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장군이었던 벤자민 버틀러(Benjamin F. Butler)가 했던 말이자 인류학자인 노라 엘렌 그로스(Nora Ellen Groce)의 책 <마서즈 비니어드 섬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에 나오는 구절이기도 하다. 당시는 19세기였으니 요즘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아직도 남아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수어를 사용하면 어딘가 부족하다 생각한다. 음성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암암리에 농인과 수어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농(聾)아동이 있는 부모들 대부분은 기를 쓰고 음성언어를 가르치려 한다. 인공와우 등 보조기기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농아동의 경우 집안에서 수어를 접할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립국어원(2008)의 조사를 보면 농인 중 3%만이 부모를 통하여 수어를 배웠다고 한다. 최근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인권위원회(2019)의 자료에서는 농인 중 유아기와 아동기에 수어를 배운 비율이 26.5%이라 한다. 일반 아동이 대부분 가정에서 언어를 습득하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상황이 이러니 가족 간에 수어쓰기를 꺼린다. 깊이 있는 대화도 어려워지고, 소통이 잘 안되어 겉도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족들은 농인들에게 "네 목소리를 듣고 싶다"라는 바람을 갖기도 한다. 소통이 원활히 되고 자유로운 교감이 되었더라면 그런 욕구는 많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이러한 바램들이 최근 KT의 ‘마음을 담다’라는 광고로 만들어졌다. 광고는 농인에게 목소리를 찾아준다(만들어 준다는)는 내용이다. 청각장애인의 가족이나 친인척의 목소리를 합성하여 농인의 가상의 목소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통이 잘 안되었던 농인 가족들에게 KT의 광고는 희소식이다. 

광고는 감성적으로 만들어져 농인을 둔 가족만이 아니라 비장애인들의 가슴을 울렸고 많은 이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온라인에서는 “감동을 받았다”, “응원한다.”, “농인 가족에게 음성이 필요하다”라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KT 광고에 반대를 하는 농인들의 목소리도 만만치가 않다. 많은 농인들이 광고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농인에게 수어가 있는데 왜 음성언어를 쓰라고 부추기냐는 것이다. 그들은 “나는 목소리를 잃어버린 적이 없다”, “나의 목소리는 수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광고에서 농인을 불쌍하게 그려져 불쾌했다.”, “수어 사용자 입장에서 차별받은 느낌입니다”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농인들은 현재 KT 광고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이 장애인들에게 자사의 기술을 지원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다. 농인이나 언어장애인의 경우 자신의 목소리에 대하여 궁금해 할 수 있다. 주변인들도 목소리를 통하여 교감하고 싶어 할 수 있다. 그럼에도 KT는 이러한 광고를 만들기 이전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농인의 현실을 살펴볼 책무가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농인들에게 음성언어를 쓰도록 강요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KT의 광고는 농인에게 목소리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더 나아가 수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심어줄 수 있다. KT의 광고로 농인들에게 음성언어를 선택하게 하는 ‘사회적인 압력’으로 작동될 수 있다.

농인들에게 음성언어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수어를 사용하든 음성을 사용하든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광고로 인하여 농인들의 언어 선택권이 줄어들 수 있다. KT는 이러한 상황을 바로 알아야 한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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