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이천시 물류센터 참사와 남성 근로자들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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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이천시 물류센터 참사와 남성 근로자들의 희생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05.0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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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영상 캡처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영상 캡처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우리 사회는 남성 근로자들의 죽음에 둔감한 것은 아닌가. 공사현장을 비롯한 산업현장에서 위험한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하는 이들은 절대 다수가 남성들이라는 사실이다. 

5. 1일 근로자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4월 29일 오후 1시 30분경 경기도 이천시의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 현장에서 가연성 물질이 폭발하면서 대형 참사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물류센터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78명 중 38명이 사망하였다. 이들은 공사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로 시공사와 하청업체 직원들이었다.

사망자 전원은 남성 근로자들로 20대 청년을 비롯해서 대부분 한창 일할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이제 막 결혼한 가장이 있는가하면 남편과 남동생을 동시에 잃은 젊은 주부도 있다.  아버지의 단 둘이 살다 사고로 이제는 홀로 남게 된 고등학교 학생도 있다. 대학생 딸의 자취방 월세를 벌기위해 지방에서 올라와서 일하던 아버지, 딸의 생일을 맞아 미역국을 끓여주고 나온 아버지의 죽음 등 힘든 환경에도 열심히 일하던 노동자 가장들의 희생이 가슴 아프다.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배치된 고인들의 영정 사진이 말하듯 이 땅에서 살아가는 보통 남성들이었다. 결혼식에서 찍었던 사진이었을까. 리본타이를 한 예복 차림의 젊은 신랑의 미소 띤 사진이 참으로 가엾다. 희생자 대부분이 일용직 근로자들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까지 겹친 경기불황에 일용직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거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족들과 자신을 위해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다 참변을 당했다.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사고 희생자들은 산업재해에 포함된다.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부동의 1위이다. 사고가 난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과 같은 건설현장, 제조업, 지하철이나 에어컨 같은 고장을 수리하는 직종을 가진 노동자들의 재해는 끊이질 않고 발생한다. 

한국은 1994년 통계가 발표된 이래 줄곧 ‘산재 사망률 1위국’을 기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산재 사고 사망자와 산재 질병 사망자를 합하면 2016년 2040명, 2017년 2209명으로 10% 가까이 늘어났다. 2018년 산재 사망자수 2,142명으로 2017년부터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하루 평균 5~6명이 산재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 산재 사망자수와 사고 유형을 보면 1인당 당 국민총소득(GNI) 3만 달러 국가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이번 참사를 빚은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도 후진국 형태의 사고나 다름없다.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산재 사망자 성별을 보면 95% 이상이 남성이다. 직종이 남성의 육체적. 신체적 조건을 필요로 하고 남성들이 하는 일이라서 산재 사망자 성비도 압도적으로 남성으로 나타난다고 봐야 할까. 공사장 일용직일지라도 분야에 따라 고임금에 속하는 편이다.  

또 일용직이라도 전기, 용접 등 정밀한 기술을 요하는 직종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산업현장, 건설현장에서 남성들이 산재 위험에 처하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 남성 근로자들은 체력을 필요로 하거나 위험한 일을 하는 관계로 여성보다 고임금을 받는 것이다. 남녀 임금차이가 이런 현상에서 발생한다.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의 단골 주장이 남녀임금 격차다. 어느 페미니스트들은 “생산직을 비롯해서 산업 현장은 남성 노동자 중심 사회다”라고 말한다. 또 여성들은 남성들의 임금에 비해 전체적으로 약 65%를 받는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면 위험하고 힘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고임금 직종에 지원하면 임금 격차가 줄어들 것이 아닌가.

드물게 남성들의 직종으로 여겨지던 용접사 일을 젊은 여성이 도전하여 화제가 되기도 한다. 20대 초반의 한 여성이 대형 조선소 기술훈련소에서 기술을 배워 용접사로 취업했다. 하지만 이처럼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영역인 직종에 뛰어드는 여성은 극히 드물다. 페미니스트들이 여성들은 임금 차별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기 전에 산업 현장의 직종, 업무, 기술 수준 등을 다양하게 고려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산업 발전에 있어 근무 환경이 열악한 분야에 종사하다 재해를 당하는 남성들의 희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비단 국내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사회심리학 교수 로이 F. 바우마이스터 지음 『소모되는 남자』에서는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근무 중 사망에 있어서 12대 1이라는 심각한 남녀 불균형이 존재한다. 미국 내 남녀 경제인구의 비율이 거의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근무 중 사망한 미국인 중 92%가 남성이다.”라고 말한다. 예컨대 미국 역시 건축 관련 직종의 96%가 남성이라는 통계가 말해주듯 그만큼 산재 사망의 위험이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업, 건축 관련 직종뿐만 아니라 우체국 집배원의 사망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최근 10년 간 과도한 업무가 원인이 되어 숨진 집배원이 348명에 달한다고 한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우정사업본부의 인력 충원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한편으로 집배원들은 고강도 노동에 내몰리는 현상이다. 역시 남성 집배원들이 겪는 일이다.

우리는 일하다 목숨을 잃는 남성들에 대해 너무 무심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사고 희생자 38명의 남성 근로자들의 죽음이 애달프다.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한 부모의 소중한 아들이었고, 신혼 주부의 남편이었으며, 편부로 살면서 자식을 키우던 아버지가 그들이었다.

역사적으로 남성들은 전투와 또 생존 경쟁에 내몰리며 사망률이 높았다. 위기에 처하면 여성과 아이들이 먼저 보호받으며 남성들의 목숨은 희생되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남성성에 대한 정의가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페미니즘이 전성기를 맞으며 여성들이 겪는 고통에만 집중하는 동안 남성들이 처한 상황은 간과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사고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우리 사회의 관심이 매우 희박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남성 근로자 38명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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