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착한 정부, 좋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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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착한 정부, 좋은 정부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0.05.1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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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괜한 지침으로 국민불편
때론 ‘무위정치’가 좋은 결과 가져와
주장환 논설위원
주장환 논설위원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오래전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아들을 낳아 출생 신고를 하러 주민센터(당시 동사무소)에 갔다. 아기 이름을 김태식(金太植)이라 신고하고 돌아갔다. 또 한사람 역시 아이를 낳아 유장영(劉璋榮)이라 신고하고 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해 보니 전자는 김대식(金大植), 후자는 유창영(劉璋榮)이라고 되어 있었다. 기겁을 해 알아 보니 호적담당직원이 전자는 실수로 점을 하나 못 읽었고, 후자는 ‘장’을 ‘창’으로 잘못 알고 기입해 버린 것이었다. 두 사람은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동사무소에서는 착오 책임을 두 사람에게 미루며 법원에 가서 정정신고를 하라고 했다. 지금은 이름 변경 신청이 쉬워졌지만 그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포기한 이들은 지금까지도 김대식, 유창영으로 살고 있다.

각설하고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국민들이 당황해 하고 있다. 필자도 어제 신청을 했는데 평소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충분히 헷갈릴 만했다. 일종의 '넛지(nudge, 팔꿈치로 찌르기·간접적 유도의 의미)' 효과가 작용할 여지가 있었던 셈이다. 졸지에 기부자가 돼 화가 많이 난 사람들은 “정부가 기부를 위한 피싱 사이트를 만든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이 문제는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의 카드 신청 메뉴 안에 기부 메뉴를 설치하도록 지침을 내렸기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당초 카드사는 지원금 신청 화면과 기부 신청 화면을 분리할 것을 요구했다. 즉, 지원금 신청 메뉴를 눌러 지원금 신청 절차를 다 한 이후에 기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만 별도의 기부 신청 메뉴를 눌러 기부하는 방안을 구상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일부러 그랬을리야 있겠는가마는 결과가 그렇게 됐으니 유구무언이다. 사실 필자도 괜히 실수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또 대통령이 60만원을 내놓고 여당이 기부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대기업들은 직원들에게 기부에 동참해 달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하니 기부금 받는게 무슨 죄를 짓는 것 같기도 하다.

착한 정부, 좋은 정부란 어떤 정부일까? 동양 고대 사상가들에 의하면 정치란 그 근본이 무위정치(無爲政治)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異論)이 없지 않고 비판도 없지 않으나 정부가 있는지 없는지 국민들이 모를 정도로 저절로 잘 흘러가는 정치라고 보면 되겠다. 위에서 예로 든 사례처럼 모르면 아예 뒷짐지고 있는게 국민들을 덜 불편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자는 “덕치(德治)란 북극성과 같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모든 별들이 그것을 향해 모여드는 것”이라고 말해 위정자들이 가만 있어도 저절로 백성들이 알아서 행하는 정치를 좋은 정치로 봤다. 이번 일도 그냥 카드사에게 맡겼으면 더 잘했을텐데 괜한 가이드라인을 만들다가 오해만 사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정부가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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