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5.18 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 '청각장애인' 김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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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5.18 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 '청각장애인' 김경철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5.2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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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옛 전남도청 자리에 있는 5.18 민주 광장에서 진행된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  사진=뉴시스
지난 18일 옛 전남도청 자리에 있는 5.18 민주 광장에서 진행된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 사진=뉴시스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듣지 못해요... 장애인이에요... 제발, 때리지 마세요... 살려주세요...”

곤봉을 휘두르는 이들에게 애절하게 수어를 했지만 허사였다. 곤봉을 휘두르는 이들의 눈에 김경철(金敬喆)씨의 수어는 허공을 가르는 ‘손짓’에 불과했다. 오히려 '벙어리 흉내'를 낸다며 김경철씨를 더 때렸다. 

1980년대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장애인에 대한 상식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무고한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곤봉을 휘둘러댔으니 그런 상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으리라. 그렇게 1980년 광주에 들어온 공수부대원들은 무지했고, 잔인했다.

김경철씨는 1956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질병으로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1980년 당시 24살, 그는 구두수선이나 구두를 닦는 등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5월 18일 그 날도 지인들과 일감을 받으러 시내의 다방 등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내에서 친구들이 공수부대원들을 보게 되었다. 친구들이 도망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하지만 그는 듣지 못해 공수부대원들에게 붙잡혔다. 공수부대원들은 곤봉으로 김경철씨의 몸과 머리 등을 사정없이 때렸다. 살려달라고, 듣지 못한다고 애원하는 모습의 그를 더 심하게 때렸다.

다른 내용의 기록도 있다. 5월 18일 오후 김경철씨는 광주 시외버스터미널에 있었다. 그날 그의 딸(김혜정님) 백일잔치가 있었다. 가족들이 모였고, 화기애애한 모임도 이어졌다. 백일잔치가 끝나고 그는 귀가하는 친척을 배웅했다. 배웅하고 돌아가는 곳에서 공수부대원들에게 붙잡혔다. 이처럼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무고한 시민이었던 김경철씨가 공수부대원들의 무자비한 폭행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것은 사실이다. 

5월 18일 밤 공수부대원들은 피를 흘리며 늘어진 그를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인 5월 19일 새벽3시 김경철씨는 사망했다. 당시 검시기록은 ‘타박’으로 적혀있다. ‘후두부 찰과상 및 열상’, ‘둔부 및 대퇴부 타박상’ 등 타박의 내용들이 기입되어 있다. 이 기록만으로도 당시 끔찍한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렇게 5.18 민주화운동 최초의 희생자를 ‘청각장애인’인 김경철씨로 기록하고 있다.

1980년 5월 25일 국군통합병원에서 진행된 고 김경철씨의 검시기록. ‘타박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 사진: 5·18기념재단
1980년 5월 25일 국군통합병원에서 진행된 고 김경철씨의 검시기록. ‘타박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 사진: 5·18기념재단

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0주년이 된다. 여기에 21대 총선이후 치러지는 행사라 기념식에 관심들이 많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기념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여야 정치 지도자들도 대거 참석을 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 다르게, 행사 이후 한 장애인단체가 국가보훈처에 항의를 했다.

행사장에 참석한 5.18 기념식 참여자 가운데 청각장애인도 있었다. 김경철씨의 장애인 지인들도 광주에 살고 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 참여했던 다른 청각장애인들도 있다. 그리고 최초의 희생자가 청각장애인이라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기념식에 수어통역사가 없었던 것이다. 광주지역 장애인단체에서 제안들을 했다고 하는데 말이다.

정부는 5.18민주화운동 관련하여 유족이나 관련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한 법률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5·18보상법)이다. 법률에 의하여 5.18의 유족이나 관련자에게 보상금이나 생활지원금 등이 지급되고 있다. 당사자에 대한 의료지원금도 지급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진상조사를 하고 있다. 명예회복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이 있다. 최초의 희생자에 대한 예우이다. 심신장애자복지법(현 장애인복지법)이 1981년 6월에 만들어졌다. 그러다보니 당시 장애인복지는 형편이 없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낮았다. 폭행을 당하는 과정에서 김경철씨는 듣지 못한다고 했으나 공수부대원들은 ‘벙어리흉내’를 낸다고 심하게 구타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40년, 장애인에 대한 정책이나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장애인복지는 여전히 미흡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여기에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도 포함된다.

5.19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하여 진행하는 행사이다. 이 규정은 장애인 관련법에 의하여 일부 규제를 받고 있다. 수어통역사 등을 배치해야하는 행사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법을 어긴 것이다.

법률 이전에, 이 기념식은 희생자나 살아 있는 이들에 대한 예우를 다하지 못했다. 장애인들이 행사장에서 차별을 경험한다면 진정한 회복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명예회복만이 전부는 아니다. 5.18을 경험했던 청각장애인들이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기념식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는 것, 작은 것부터 말이다.

5.18 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가 ‘청각장애인’ 김경철씨라는 것을 정부는 잊어서는 안 된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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