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내 스피치기술의 8할은 장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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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내 스피치기술의 8할은 장터에서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0.05.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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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구례 5일시장 모습입니다. 사진=김재화 제공
요즘의 구례 5일시장 모습입니다. 사진=김재화 제공

[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제 밥벌이 수단 중, 글 쓰는 거 말고 ‘말 잘하기 지도’(스피치 코디네이팅)가 있는데요, 그 기술을 익힌 교육장은 어릴 적 자주 갔던 장터였던 것 같습니다.

초딩 때 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했던 국어책 읽고 외우기 훈련, 대학 때 학교방송 아나운서와 라디오방송 정기출연도 화술 단련에 혁혁한 도움이 됐겠지만 그 기초는 뭐니 해도 고향인 전라남도 구례의 5일 장터가 확실합니다.    

화개와 인접한 구례 장날은 3.8일인데(지금도!), 걸음 뗐을 무렵부터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장터에 따라 나섰습니다.

어머니의 할인 얻어내는 고난도 스피치는 이랬습니다. 구입상품 1순위 필수품임에도 점빵에선 슬쩍 뒤적거릴 뿐 별관심이 없는 척 했습니다.

“(의도적 모놀로그)...요거시 을매나 할랑가 모르것네잉. 아따, 꽁짜로 줄 거 같진 안코, 당장 엄써도 된 물건잉께 담에 사자~”

이 한마디 중얼거림에 주인은 알아서 에누리된 가격을 제시합니다. 여기에 2차 기술 들어갑니다. “쩌그 옆집서는 더 싸게 준다고 했는디도 안 샀는디...”

우와~ 긴장한 주인 입에서 2차 다운가격이 서둘러 나옵니다.

물론 빡빡한 상인도 있는데, 이들에겐 이럴 땐 메가톤급 한 마디를 쏟아내십니다.

옷가지일 경우 “우리 아그들이 야(저 말입니다)말고도 일곱이나 더 있응께, 다음 장에 치수를 재가꼬 여러 개 살 껀디라우...” 상인은 대형 손님을 놓칠까봐 얼른 물건을 내놓습니다.

말을 장소팔보다 더 빨리하고 신동엽이나 김구라의 유머보다 더 웃기게 하는 것은 약장수판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개그, 노래, 마술, 차력 등 온갖 콘텐츠가 빵빵한 그 종합예술단 중 제 관심 프로그램은 단연 사회자의 개그와 감칠맛 진행이었습니다.

겹겹이 에워싸인 인파, 폭소와 감탄사가 끊이지 않은 곳이 약장수들의 노천무대입니다. 자전거 타는 원숭이, 목에 징징 감긴 큰 구렁이, 단단한 쇠 링들이 팍팍 꿰이는 마술, 애절한 소리를 내는 손풍금 등도 흥미를 끌었지만 MC의 찰진 멘트는 어쩜 그리 재밌던지요!

사회자, 무슨 만병통치약을 손에 들어 보이고 사람에게 있기 마련인 여러 아픈 곳과 수십 가지 병명을 좔좔 읊는 청산유수 말의 기교, ‘10분만 기다리면 이 구렁이라 알을 관객 수 만큼 낳을 것이고 그걸 하나씩 나눠줄 것’이라 해서 누구도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키며 몰입케 만드는 집중력 스피치!

맨 앞자리에 질펀 주저앉아 넋 놓고 구경하는 우리 애들에게는 목소리를 우스꽝스럽게 변조해 “애들은 가라! 구경만 하고 안 사면 고추가 떨어진다!!”라고 호러개그를 외쳤는데, 몇 아이들은 고추를 붙잡고 바로 내뺐지만 저 같은 ‘고수 관객’은 그게 허무맹랑한 뻥이라는 걸 잘 알기에 그냥 따라 웃어주며 구경을 계속 했습니다.

욕은 욕이되 상대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는 주지 않는 ‘험한 말’ 그리고 높은 음으로 고함치는 것을 유지하고, 겁은 주지만 당장 주먹다짐까지는 가지 않는 1대 1의 격한 토론은 막걸리집 앞서 싸우는 아저씨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싸움꾼들은 생면부지 사이는 아니고 대개는 함께 장에 온 친구이거나 모처럼 만난 이웃 동네 지인들이어서 폭력사태는 야기하지 않아 경찰이나 검찰청 수사관들이 닥치진 않는 선에서 끝났습니다.

싸움이 절정에 이르고 당사자들이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순간 목소리 톤이 나긋나긋 하고 온화한 표정의 중재자가 나타나 말립니다.

날카로운 이 드러내며 마주 으르렁 대던 사람들이 다시 막걸리 집으로 어깨동무하고 들어가게 만드는 신통방통한 화해도출 스피치도 이때 익혔습니다.

아수라판이나 전장(戰場) 같으면서도 평화가 공존하는 5일 장터.

그 왁자지껄함이 결코 깽판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서로를 존중하고 웬만한 건 웃어넘기는 스피치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 겁니다.

저 말하기 수업, 실질적으로 잘 받은 거 같지 않나요? 하하하!!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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