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한국수어법과 농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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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한국수어법과 농인의 삶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6.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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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6월, 장애인단체들이 한국수어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철환 제공
지난 2012년 6월, 장애인단체들이 한국수어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철환 제공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농인 말ᄊᆞ미 ᄒᆞᆫ글과 달아 문ᄍᆞᆼ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ᆡ / 이런 젼ᄎᆞ로 농인들이 니르고져 홇배 이셔도 / ᄆᆞᄎᆞᆷ내 제 뜨들 시러펴디 몯 ᄒᆞᆶ노미 하니라.’

2012년 6월, 장애인단체에서 ‘한국수화언어법’(한국수어법) 제정을 촉구하던 때였다. 정부나 국회가 수어법 제정에 관심을 갖지 않자 장애인들이 서울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상 앞에 모였다. 그리고 떡이며 과일을 조촐하게 차려놓고 고사를 지냈다. 

위 문구는 그 자리에서 제문 형식으로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읽었던 것 가운데 일부다. 형식은 ‘훈민정음’ 서문을 기초로 하였다. 

내용은, ‘농인의 언어인 수어가 한글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농인들의 답답함이 크고, 자신의 의견을 원활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세종인 내가 농인들을 위하여 수어를 만들어 반포한다.’ 정도로 보면 된다. 그리고 이 문구에 ‘훈농수어’(訓聾手語)라는 이름도 붙였다. 한국수어법을 만들려 했던 이들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운동의 결과로 한국수어법은 2015년 12월 31일 국회를 통과했고 다음해 2월 3일 법률이 공포되었다. 이제 수어를 전문적으로 강의하는 수어교육원 인증제가 시행하고 있고, 수어를 가르치기 위한 교원도 양상하고 있다. 수어를 배우려는 이들도 늘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수어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코로나19 브리핑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었고, 지방자치단체의 브리핑에도 수어통역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많은 국민들이 수어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캠페인을 통하여 국민들이 수어에 대한 친근함도 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만큼이나 농인들의 삶도 나아졌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한 연구(국가인권위원회, 2019)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어사용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응답한 농인은 39.1%에 불과했다. 그리고 응답자 가운데 34.4%만이 한국수어법 시행 이후 수어사용 환경이 확대되었다 하고 있다. 수어에 대한 인식 변화가 농인들의 삶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다. 여전히 일상생활에서 수어통역 지원 등 불편이 있다. 공공기관, 병원 등 시설의 이용이나 교육 등 전문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는 방송 시청도 포함된다. 비장애인들에는 한물간 매체이지만 농인들에게 방송은 여전히 장벽이다. 

다행히 지난 달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있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메인뉴스에 농인(聾人)들의 시청권을 위하여 수어통역을 하라고 한 것이다. 메인뉴스라고 하면 KBS의 9시, MBC 및 SBS 8시 뉴스를 말한다. 방송사들이 권고를 이행할지 두고 봐야하겠지만 농인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얼마 전 한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정부를 향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농인들의 삶을 개선해 달라고 말이다. 수어가 일상이 될 수 있는 삶을 달라고 말이다. 8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수어를 사용해도 차별받지 않도록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수어법이 농인의 법이 되려면 농인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이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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