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동자의 죽음 "30년 장애인고용촉진법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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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노동자의 죽음 "30년 장애인고용촉진법도 사망"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6.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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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지적장애인 노동자 김재순, 지난달 파쇄기 사고로 사망
"회사 그만두었다가 장애인 일자리 없자 다시 취업, 안전장치 없이 사고 당해"
아버지 김선양씨 "회사, '시키지 않은 일하다 죽었다'며 개인 과실로 덮으려 해"
7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습. 사진=임동현 기자
7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습. 사진=임동현 기자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청년 장애인 노동자 김재순을 죽인 것은 기업의 안전불감증과 고용노동부의 감독 소홀, 그리고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 지금의 현실이다. 김재순의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고 대한민국 정부의 30년 일자리 정책은 사망했다".

8일 오후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장애인들과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지난 5월 22일 파쇄기 작업 중 산업재해로 사망한 중증지적장애인 노동자 故 김재순(26)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지난 22일 광주에 있는 폐기물 처리 업체 조선우드에서 파쇄기 청소 업무를 하던 중 기계 상부에 올라가 청소를 하다가 발이 미끄러지면서 파쇄기 칼날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사업장에는 법적 수준의 안전 및 방호장치가 적절히 구비되지 않았고, 적합한 관리감독이나 협업 인력 배치도 준수되지 않았다. 파쇄기 청소 업무는 2인 1조로 진행되어야하는 고위험 노동이었지만 당시 김재순은 혼자 파쇄기 청소 작업을 해야했고 그렇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 특히 이 공장은 지난 2014년에도 비슷한 사망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이번에 또다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기업의 안전불감증과 함께 고용노동부의 감독 소홀 문제도 지적받고 있는 것이다.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마련된 故 김재순의 분향소. 사진=임동현 기자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마련된 故 김재순의 분향소. 사진=임동현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김씨가 지난 2018년 2월 심한 업무 강도로 조선우드를 그만두었지만 다른 일을 구하지 못해 결국 지난해 8월 다시 힘든 일이 기다리는 조선우드로 돌아온 것이 이번 사고로 이어졌다면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장애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현실에서 1990년에 제정된 장애인고용촉진법은 사실상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김재순의 '사회적 타살'에 대한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의 사과와 함께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의 전면 개정, 중증장애인 지원 근로지원인 예산확대, 장애인고용사업장 장애유형 장애인편의제공 및 안전실태 전면조사 실시, 중증장애인최저임금 적용제외 폐지(최저임금법 제7조 삭제),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1만개 보장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정성주 광주장애인자립센터협의회 회장은 경과보고에서 "조선우드는 나무, 합성수지 제품 등을 파쇄하는 업무를 하는 회사로 파쇄기가 그만큼 강하고 고장도 잦았다고 한다. 2014년 사망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안전장치를 전혀 설치하지도 않았고 2인 1조로 일하게 되어 있음에도 김씨가 시험 가동을 하고 사수는 보고 돌아가는 식으로 업무가 진행됐다. 근로감독만 제대로 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고 성실히 일했던 사람이 고인이었다"고 말했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장애인이 지역에서 가족과 시설에서 떨어져 살아보겠다고 일자리를 열심히 알아보고, 사회에 나오려고 발버둥 치지만 노동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 없다. 어떻게 위험한 현장에서 혼자 일하다 기계에 빨려 들어갈 수 있는가. 공장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환경이 또 한 명의 노동자를 죽였다. 장애인도 안전하고 자유롭게 내 권리를 보장받으며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발언하는 故 김재순의 아버지 김선양씨. 사진=임동현 기자
발언하는 故 김재순의 아버지 김선양씨. 사진=임동현 기자
故 김재순의 아버지 김선양씨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故 김재순의 아버지 김선양씨와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김씨의 아버지인 김선양씨는 "회사는 우리 아들이 허드렛일을 했고 회사가 시키지 않은 일을 하다가 아들이 죽었다며 '개인 과실'로 몰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나도 2002년도에 산재를 당해 장애인이 됐다. 회사들이 '일반인'이라고 하면 채용하려하지만 '장애인'이라고 하면 싫어했다. 두 번 다시 젊은 청춘이 억울하게 죽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사회를 위해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아버님께서 중도 장애를 겪으셨다고 하는데 나도 24세 나이에 장애인이 됐다. 실의에 빠져 있다가 1988년부터 직업 기술을 배웠고 그 때 투쟁을 해서 1990년에 만들어진 것이 '장애인고용촉진법'이었다. 하지만 그 법이 만들어진지 30년이 됐는데 장애인의 삶이 나아졌는가? 김씨가 일이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뒀는데 받아주는 회사가 없으니까 다시 그 회사에 들어갔다가 이런 결과를 맞은 것이다. 회사는 김씨가 장애인인지도 몰랐다고 했다고 한다. 김씨를 죽인 그 파쇄기가 언젠가는 우리를 죽일지도 모른다. 250만 장애인들에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장애인고용촉진법은 사실상 사망했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김선양씨가 아들의 영정을 바로 세우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김선양씨가 아들의 영정을 바로 세우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이 분향소에 조화를 놓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이 분향소에 조화를 놓고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한편 이날 서울고용노동청 앞에는 故 김재순의 분향소가 마련이 됐고, 회견을 주관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오는 10일 오후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민주노총 등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장애인고용촉진법 개정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선양씨는 "진상조사단이 조선우드에게 일주일치 CCTV 영상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3일치밖에 공개하지 않았고 '자기가 그 일을 하려다가 사고를 당했다', '기계를 능숙하게 다뤘다'는 식으로 계속 아들의 개인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회사 측의 책임없는 모습에 분노해 이번에 나서게 됐다. 예전 사고도 이렇게 무마시킨 것 같다"면서 "아들이 일을 하면서 많이 힘들어했고 그만둔 뒤에도 일을 구하지 못해 마음 고생이 심했다. 꼭 억울한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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