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불교계의 '장애 인식 개선'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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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불교계의 '장애 인식 개선'을 바라며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6.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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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구ㆍ경북 배성복 기자
사진=대구ㆍ경북 배성복 기자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한 장애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기분이 나쁘다고 한다. 지난 4월 30일 불교계가 진행한 ‘코로나19 극복·치유를 위한 기도 입재식(入齋式)’에 장애인을 차별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지난 3월부터 대부분의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불교계도 이러한 상황을 맞아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한 달 뒤로 미루고, 대신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을 바라는 기도시작 의식(입재식)으로 간소하게 진행했다.

장애인의 요청에 따라 입재식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약사경으로 알려진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의 내용이다. 

약사경에는 '약사유리광'이라는 부처가 이상향을 건설하여 모든 이들의 질병을 고치겠다고 맹세하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고려시대 이후 질병이 돌거나 국가적으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기도의식에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입재식에도 약사경이 독송(讀誦)되었다. 

약사경에는 “온갖 기관이 불구이거나, 추악하고 천하며 완고하고 어리석거나, 눈멀고 귀먹고 벙어리이거나, 손과 발이 비틀리고 앉은뱅이이고 꼽추이거나, 온몸이 곪고 미치광이이거나 하는 온갖 병고가 있더라도(한글대장경)”라는 구절이 있다. 장애인이 문제를 제기한 내용이다. 

요즘은 ‘벙어리’, ‘앉은뱅이’, ‘꼽추’ 등과 같은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차별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용어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교의 경전에는 이러한 용어가 많다. 한 발 더 나아가 ‘장애 결정론’의 시각도 가지고 있다. 

불경 가운데 하나인 ‘대보적경(大寶積經)’에는 “완전하거나 불구자거나 중생 무리들 / 곱사등이·창병 등 추한 모양들 / 집착하기 때문에 다 병신 된다(한글대장경).”라는 내용이 있다. 전생의 집착 때문에 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른 경전에도 비슷한 내용들이 있다. 부처나 승가(스님집단)를 비방하면 장애인 등 고통 받는 존재로 태어나고, 욕심이나 화냄 등을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서에는 ‘하나님의 징벌’로, ‘죄의 값’으로, ‘진리에 역행’하여 장애가 생긴다는(신명기 28:28 등) 내용들이 있다. 하지만 기독교는 장애인을 비하할 수 있는 용어를 순화하고 있으며, 장애인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치거나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장애가 생겼다'(요한복음 9:1-12 등)는 등 긍정성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불교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종교다. 우리 땅에서 16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며 우리의 문화를 형성했고, 집단 무의식의 바탕이 되었다. 그럼에도 현대의 불교는 장애인 등 소외계층에 대한 가치관이 경직되어 있으며, 지원을 위한 노력도 소극적이다.

기독교의 경우 장애인 성직자(목사)는 몰론 장애인 전도사들이 매년 배출되고, 장애인전문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포교들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불교계는 그렇지 못하다. 장애인 성직자가 없으며, 장애인 포교사도 극소수다. 장애인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열악하다. 편의시설 미비로 사찰에 가는 것을 포기하는 장애인들도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시혜와 동정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불경 내용을 단순하게 '차별'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경전이라 드러나는 내용만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낡은 용어가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벙어리’, ‘앉은뱅이’, ‘꼽추’ 등 장애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용어들 말이다. 장애인에 대한 낡은 시각도 경전 곳곳에 깔려 있다.

현재 국제적으로 ‘장애’의 시각이 바뀌고 있다. 장애의 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구성과 인식(문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장애’가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휠체어를 이용하지만 경사로가 있고, 승강기가 있다면 장애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듯이 말이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개인이 지은 전생의 죄 때문에 장애로 태어났다는 업(業) 결정론은 문제가 있다. 이런 결정론은 불교의 사상과도 맞지가 않다. 불교의 견지에서 ‘장애’는 복잡한 관계와 조건 속에서 형성된다. 장애의 원인을 ‘장애’ 개인이 아닌 관계(사회)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불교계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현대흐름에 맞게 경전의 내용도 재해석해야 한다. 장애인을 비하할 수 있는 용어도 순화를 해야 한다. 비하용어로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말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있었다. 그 때 이 땅에 부처님이 오셨다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소홀히 하는 한국불교에 안타까워하지 않을까, 어쩌면 가슴을 치고 통탄해하였을지 모른다. ‘업’이라는 방편(方便)에 사로잡혀 불교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모습에 말이다. 장애인과 관련하여 한국의 불교계가 돌아보아야 할 내용이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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