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장애인보조기기 보험급여 고시 개정안, 재고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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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장애인보조기기 보험급여 고시 개정안, 재고되어야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6.2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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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전 중구청이 민원실에 배치한 보청기. 사진=대전 중구청
지난해 대전 중구청이 민원실에 배치한 보청기. 사진=대전 중구청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청각장애인 진단을 받기 위하여 이비인후과 병원에서 청력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말이 너무 빨라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청각장애인이라 입술 모양을 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필담(筆談)을 부탁하니 간호사가 대신 간단히 적어주었습니다. 2차 검사를 위하여 병원에 갔을 때는 다른 의사였는데, 마스크를 써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필담을 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별거 아니란 듯) 나에게 밖에 가라고 하며 손짓으로 간호사를 불렀습니다.”

청각장애인 H씨가 청력검사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이다. 이비인후과 병원(청각장애 진단검사 지정)은 보청기 처방 등을 위해 난청에서부터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농(聾人)에 이르기까지 가야하는 곳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청각장애인들이 H씨처럼 이비인후과 병원의 진료 과정에 소통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이 청각장애인의 특성을 잘 모른다. 구화나 필담, 수어 등 어떤 의사소통 방식을 제공해야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보건복지부의 고시인 ‘전공의의 연차별 수련교과과정’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비인후과 전공의들의 수련 교과목에 청각과 관련한 인체의 특성이나 검사, 수술 등은 있다. 하지만 장애의 특성이나 구화나 수어 등 소통의 기술 등 교과목은 없다.

다시 말해 귀의 구조 등 의학적인 병변에 대해서는 의사들이 전문가일 수 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과의 소통이나 장애 특성에 따른 지원의 측면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진료나 청력검사 과정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보건복지부가 고시를 개정하고 있다. 개정을 하고 있는 고시는 '장애인보조기기 보험급여 기준 등 세부사항'이다. 이 고시안에는 보청기판매업소의 자격기준에 '이비인후과 전문의 1인 이상'이라는 문구가 포함되고 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보청기에 대한 처방만이 아니라 판매까지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고시개정 논란은 일부 보청기 판매점이나 몇몇 청각장애인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2015년부터 보청기의 국민건강보험금 환급금액이 대폭 늘었다. 최대 34만원에서 131만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환급금액이 늘면서 여러 잡음도 생겼다. 한때 ‘떴다방’이나 '장롱 보청기'라는 용어까지 돌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보청기를 판매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 있어서다. 고시 개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비인후과의원들이 보청기를 판매할 경우 얻는 수익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청기 급여로 2018년 한 해 767억원(국민건강보험공단, 2020)이 지출되었다. 청각장애 진단 초기부터 보청기 판매까지 의사들이 개입할 경우 보청기 구매에 대한 정보독점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독점으로 연간 400억원 이상의 보청기 급여를 의료인들이 가져갈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청각장애 진단이나 보청기 검수 등으로 인한 의료인들의 수익을 빼고 말이다.

국내에서 의사는 직접적으로 안경을 팔 수 없다. 안경 판매는 안경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보장구 가운데 하나인 휠체어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의사는 의료전문가이지 판매 전문가는 아니다. 보청기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의료적 전문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장애의 관점에서 청각장애의 특성이나 소통의 방식 등 전문지식이 있어야 한다.

청각장애인 부모들과 보청기 관련 전문인들이 고시 개정에 반대를 하고 있다. 일부 장애인단체도 청각장애인이 아닌 의료전문가 중심의 사고라며 반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소통이 되지 않는 이비인후과 병원들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진정하고 있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책소비자’가 중시되는 것처럼 보청기 소비자인 청각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추진 중인 장애인보조기기 관련 고시 개정안은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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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3 19:59:55
병원에서 보청기팔려면 의사부터 수어부터 능통하게 배우시길 병원독점 반대합니다

정의 2020-06-25 12:55:59
글 내용에 100%동의해요
복지부가하는 보조기기고시 개정안은 안되요

강지영 2020-06-25 12:21:59
병원에서 청각장애 불편과 불만 많아요
무조건 인공와우 수술하라고하고 문제도 많아요,
의사 보청기판매 반대해요

날마다 2020-06-25 12:16:46
이비인후과 병원에서 소통이 잘 안되요.
청력검사나 보청기처방은 그냥 오는 환자가 아니에요.
장애인과 소통 잘하게 서비스부터 먼저 해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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