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민사소송 등 수어통역비용 지원’에 대한 아쉬움
상태바
[소통칼럼] ‘민사소송 등 수어통역비용 지원’에 대한 아쉬움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0.06.30 10:43
  • 댓글 0
  • 트위터 423,6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군산법원
사진=군산법원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얼마 전 대법원은 민사소송규칙과 형사소송규칙의 일부를 개정했다고 밝혔다. 재판과정에서 청각장애인에게 수어통역 비용을 부과해오던 것을 바꾼 것이다.

민사소송규칙에는 수어통역 등의 비용을 청각장애인이 미리 납부(제19조 등)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고 형사소송규칙도 일부 조항에 수어통역 비용의 청각장애인이 부담(122조의2 등)이 있는데 이들을 국가의 부담으로 전환한 것이다. 가사소송도 마찬가지다. 민사소송 규칙을 일부 준용하고 있어 가사소송 과정에서 개정된 내용들이 적용될 수 있게 되었다.

민사소송에서 청각장애인의 수어통역 비용부담 문제는 논란이 많았지만 쉽사리 해결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7년 한 청각장애인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진정을 냈다.

가사소송 진행과정에서 청각장애인이 해당법원에 수어통역 등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송구조제도에 자격요건이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결국 그 청각장애인은 수어통역을 위해 수어통역 비용을 납부하라는 법원명령을 받았고, 청각장애인은 수어통역 비용의 개인 부담은 부당하다고 차별진정을 한 것이다.

이 차별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이 재판진행에 있어 장애인들이 실질적으로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이를 위하여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하거나 소송구조 제도를 개선하는 등 정당한 편의제공 방안을 마련하라”라고 대법원장에게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나간 후 국회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대 국회 당시 민주평화당 소속이었던 장정숙 의원이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하였다. 발의 되었던 개정안의 내용은 민사소송이나 가사소송에서 당사자가 장애로 인하여 소요되는 수어통역, 속기, 녹음 등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률안은 개정되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민사소송 등에서 수어통역비의 국고 부담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해당규칙을 개정하며 대법원은 수어통역 지원 등으로 (장애를 줄여) 평등을 실현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기 위해 수어통역 비용 등을 국가가 부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본질을 다 보지 못한 것이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한국수어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법절차에서 수어통역지원을 장애인에게 대한 서비스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수어’라는 또 다른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도 보아야 한다.

수어통역을 서비스로 한정한다면 여건에 따라 지원될 수도 있고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기본권으로 본다면 달라진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재판에 참여할 권리가 형성되듯이 청각장애인은 수어로 재판에 참여할 권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럴 때 ‘실질적 동등’이 생길 수 있다.

2012년 9월 ‘도가니’ 사건으로 유명한 한 농학교 성폭행 사건 관련 공판이 있었다. 심각한 인권유린 사건이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는 청각장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재판장에 다수의 청각장애인들이 방청을 하고 있었다.

이에 변호인은 재판부에 방청 청각장애인들을 위하여 수어통역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불허했다. 원고가 청각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 일부 규정이 바뀌기는 했지만 법원의 수어통역에 대한 관점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수어통역을 ‘부가서비스’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이 민사소송 규칙 등을 개정하면서 드러난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서비스의 측면으로 ‘실질적 평등’은 이루기 어렵다. 진정으로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지려면 장애인의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 언어적 소수자의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법원을 비롯한 일상에서 수어통역이 ‘기본권’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SW

ldh@economicpos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