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칼럼] “뭇 생명이 죽어간 땅을 다시 죽이는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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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칼럼] “뭇 생명이 죽어간 땅을 다시 죽이는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 이정현 환경운동연합 사무부총장
  • 승인 2020.07.0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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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전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새만금 생명평화 미사. 사진=이정현 제공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새만금 생명평화 미사. 사진=이정현 제공

 

[시사주간=이정현 환경운동연합 사무부총장] 지난달 28일 오후, 새만금을 지키고 부활을 다짐하는 장승들 너머 세계잼버리 부지 매립 공사가 한창인 전북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 해창 장승벌에서 나지막한 기도가 울려 퍼졌다.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뭇 생명이 죽어간 땅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 하느님의 뜻’ 이라는 새만금 생명평화 미사를 열고 매립 속도전 중단과 해수유통을 기원했다. 새만금해수유통 추진 5대 종단 공동행동(준) 차원의 기도회로는 이번이 불교, 개신교, 원불교에 이어 네 번째다.

“새만금 해창에는 우주의 신비가 다 깃들어 있어요.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떠오르고 그 힘으로 물이 들고 나고 여기에 뭇 생명이 둥지를 틀었으니 이곳을 회복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회복하는 길이고, 새만금을 새로운 생명의 땅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구원의 길입니다.”

지난 2003년 3월28일, 이곳 부안 해창갯벌을 떠나 서울까지 65일간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며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파괴되고 있는 자연에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담아 참회의 삼보일배를 했던 문규현 신부의 말씀이다. 당시를 회상하며 불교, 개신교, 원불교, 천주교가 뭇 생명의 상생과 평화를 기원하며 해창갯벌에 함께 기도처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미사를 집전한 조민철 신부는 “코로나 이후 공존의 이유, 환경의 가치가 부각되면서 다시 새만금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면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정치인들에게 새만금의 미래를 맡기지 말고, 생명과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고 토론도 하면서 해수유통이라는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어내자” 고 강론을 했다.

새만금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성직자들이 다시 새만금 해창에서 기도와 법회를 시작한 이유는 2023년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잼버리대회 때문이다. 이 일대가 부지로 선정되고 올해 들어 매립 공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모진 세월의 풍상을 맞은 장승들만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십수 년 전 해창갯벌은 내변산에서 흘러나온 직소천이 만든 기름진 갯벌이었다. 질 좋은 바지락이 지천이었다.

새만금 사업을 두고 찬반 공방이 치열하던 2000년, 어민들과 환경단체는 다음 세대에게 갯벌이 온전하게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향나무를 갯벌에 묻는 매향제를 올렸다. 그리고 하나둘씩 갯벌 보존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장승을 세우기 시작했다.

전국의 환경연합 회원들은 새만금으로 모여 갯벌이 보내는 SOS 구조신호를 사람 띠로 써냈다. 도요새를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여기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문양을 새긴 나무 조각과 뒤집어진 배를 올려세운 최병수 작가의 작품이 이곳을 채웠다. 팃낙한 스님도, 호주의 상원의원도 이곳을 찾았다. 4대종단 성직자들이 참회와 고행의 삼배일보를 시작한 곳도 이곳이다. 2006년 4월 최종 물막이 이후에는 수십여 개의 솟대를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새만금 해창갯벌은 환경운동의 성지다. 새만금을 지키고자 했던 기억과 치유의 공간이자 지금도 상실의 바다를 되살림의 바다로 만들어 가기 위해 새만금의 변화를 기록하고 해수유통을 통해 환경도 살리고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대안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희망이 담겨있다.

그런데 전북도와 농어촌공사는 잼버리 행사장 진입도로의 개설을 이유로 이전을 요구해 왔다. 이것은 환경보존의 역사적 배경과 철학을 무시하는 야만적 행위다.

지난 6월23일, 전북도청에서 해창 장승벌 보전을 염원하는 전국의 종교·시민사회단체들도 기자회견을 갖고 “먼지 날리는 황무지보다는 자연 상태의 초지와 갯벌에서 야영과 과정 활동을 하는 것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강조하는 잼버리의 취지에 맞는다” 고 주장했다. 예산 낭비를 막고, 미래의 잠재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잼버리 후에 갯벌이 복원될 수 있는 생태적 관점의 계획으로 변경할 것을 촉구했다.

전북스카우트연맹 관계자의 생각도 비슷하다. “해창 장승은 잼버리 참가자들에게 환경보전의 정신과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갈등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민주주의의 교육현장이니 보전하는 것이 당연하다” 고 말하고 있다.

잼버리 부지를 농어촌공사가 매립하는 이유는 정부가 편법으로 부지의 용도를 관광레저용지에서 농업용지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새만금 관광레저용지는 한때 민간자본으로 540홀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말까지 나온 곳인데 아무도 투자를 하지 않다 보니 다급해진 정부가 일시로 농업용지로 바꾸고 농어촌공사에게 맡긴 것이다.

돈의 출처는 농지관리기금 2179억원이다. 농지로 쓸 땅도 아닌데, 농업과 농촌을 위해서만 쓸 수 있는 이 돈을 잼버리부지 매립에 쓰는 것은 불법의 소지가 크다. 농지로 쓸 수도 없다. 농사에 필수적인 물을 대는 수로나 홍수를 막을 유수지 조성, 심지어 어떤 작물을 심을 것인지 등 농지이용계획이 전혀 없다. 기존의 농업용지 매립사업과 다르게 고(高)매립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알고도 승인했다면 정부가 법을 어긴 것이요, 모르고 승인했다면 잼버리 대회를 신청한 전라북도에 놀아난 것이다.

게다가 부지를 매립하는 흙은 새만금호 바닥의 펄을 준설해서 쓴다. 이 펄 흙은 매우 작아서 먼지가 많이 발생한다. 부안 주민뿐만 아니라, 잼버리에 온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먼지로 인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청소년들은 새만금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게 될 것이니 전북의 이미지는 실추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농지로 만든 땅에서 잼버리 대회를 할 거라면, 이미 계화도 서쪽 편에 만들어 놓은 드넓은 농업용지를 사용하면 어떤가? 이미 이곳은 식물이 활착해서 먼지 피해도 덜할 것이고, 예산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아니면 신시도와 야미도 사이의 관광레저용지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곳은 오랜 기간 육상으로 드러난 곳이고, 이미 캠핑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이 부지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잼버리를 끌어들여 일단 땅부터 만들고 보자는 속셈이다. 새만금국제공항을 따내기 위해 시간적으로 개항이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잼버리를 이용해 예타를 면제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못된 어른들의 정치적 놀음에 청소년들의 잔치를 이용한 것이다.

갯벌로 복원 가능성이 높은 곳을 대규모로 매립하여 환경친화적인 세계잼버리를 개최하겠다는 것은 뜻 있는 스카우터들의 비웃음을 살 일이다. 잼버리에 참여한 청소년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다. SW

leekfe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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