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북한] 동요 ‘반달’은 남·북한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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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북한] 동요 ‘반달’은 남·북한이 다를까
  • 양승진 북한 전문기자
  • 승인 2020.07.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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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명 남한에선 ‘반달’ 북한에선 ‘반월가’로 불러
1924년 윤극영 작사·작곡 8분의 6박자 등 같아
가사는 북한사투리 때문에 조금 다른 곳도있어
남한 '반달' 악보와 가사. 사진=인터넷 캡처
남한 '반달' 악보와 가사. 사진=인터넷 캡처

[시사주간=양승진 북한 전문기자]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동요 반달은 남·북한이 다를까.

네이버 지식인 등에 북한의 반달에 대한 질문이 있는 것으로 보면 남·북한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먼저 곡명을 보면 남한은 반달인데 북한에서는 반월가라고 부른다. 1924년 작사·작곡은 모두 윤극영(尹克榮 1903-1988) 선생으로 같다. 8분의 6박자도 같고 남한은 조금느리게북한은 천천히로 같은 뜻이다.

가사는 비슷하지만 남·북한이 조금 다르다.

1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시작되어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1절은 하얀 쪽배엔이 원래 가사인데 남한에서 하얀 쪽배에로 쓰는 경향이 있다.

2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 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북한에서 2절은 구름나라 지나서 어데로(어디로) 가나로 쓰고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비치) 이는 건” “새별(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로 조금 다르다. “어데로는 북한 사투리가 붙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반월가' 악보와 가사. 사진=
북한의 '반월가' 악보와 가사. 사진=평양소붕우

동요 반달은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겨레의 아픈 마음을 달래고 겨레에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쓰인 곡이다.

방정환(方定煥)이 제창한 어린이문화운동이 1923년 색동회에 의해 펼쳐지게 되자 윤극영은 색동회의 일원이 되어 나라를 빼앗긴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꿈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동요를 부르게 하자고 주장했다.

당시만 해도 젊은이·어린이 구분 없이 창가를 부르던 것을 어린이의 생활감정과 정서에 맞는 창작동요를 지어보자는 의미에서 노래단체 따리아회를 조직했다. 여기에서 동요를 작곡하고 어린이들을 모아 노래도 가르치게 됐다.

반달을 비롯해 설날’ ‘고드름’ ‘귀뚜라미’ ‘따오기등 수많은 동요가 이때 작곡됐다. ‘반달의 가사 2절 끝부분에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는 노랫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일제강점기 불행한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와 희망을 북돋고 있다.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에 어린이뿐만 아니라 남녀노소가 모두 즐겨 부르던 동요로서 오늘날에도 잊혀 지지 않는 민족의 노래로 남게 됐다.

윤극영 선생은 한국 어린이 문화운동의 선구자로 경상법학 전문을 중퇴하고, 동경 우에노 음악학교(현 동경예대) 사범과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그는 일본 유학 중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을 피해 서울로 귀국해 방정환과 함께 조선 최초의 어린이 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결성하고 한글 보급과 창작동요를 통해 아동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다.

당시 그는 동경에서의 조선인 학살과 귀국하자마자 시집간 누나의 사망소식을 듣고 매일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어느 날 새벽, 집 근처인 서울의 삼청공원에 나가 새벽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면서 조선 민족의 처량한 운명을 생각했다고 한다. 새벽하늘에 떠있는 반달이 나라 잃은 자신의 모습처럼 보였고, 순간 가사와 곡이 영감처럼 떠올랐다고 한다. 즉시 집으로 돌아와 어린이들의 생활감정과 정서에 맞게 동요로 만든 곡이 바로 이 '반달'이다. SW

ysj@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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