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지지 퇴출’ 게임업체, 차별에 철퇴 가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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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지지 퇴출’ 게임업체, 차별에 철퇴 가해질까?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7.1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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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들 반발’ 이유로 페미니즘 관련글 올린 작가 및 일러스트레이터 퇴사, 교체
인권위 “게임 업계 내 여성 혐오 및 차별적 관행 개선 필요” 의견 표명
“소비자 요구 인권, 정의에 어긋난다면 무시하거나 설득하는 게 기업 책무”
14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게임업계 사상검증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이행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14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게임업계 사상검증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이행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 8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게임업계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웹툰 작가 등이 페미니즘 관련 이슈에 동의를 표했다는 등의 이유로 업계에서 퇴출된 사건에 대해 '개선 의견'을 밝혔다. 인권위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및 관련 게임업체 등을 대상으로 "게임 업계 내 여성 혐오 및 차별적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 2016년 7월 한 게임사가 SNS상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당사 게임의 성우의 계약을 해지하고 해당 성우의 녹음을 교체한 일이 있었다. 이후 이를 비판하고 관련 게시글을 리트윗한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들이 일부 유저들의 반발을 이유로 퇴사 및 교체 등 징계를 당하고 작업물이 전면 교체되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게임업계가 페미니즘에 대해 '사상 검증'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한 게임사는 페미니스트를 팔로우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실명과 징계성 면담 기록을 자사 홈페이지에 공식 게시하고 이를 통해 게임사 대표가 '페미니즘은 반사회적 사상'이라고 말한 것이 드러났으며 게임업계 사상검증 반대를 표방한 번역자의 번역물을 폐기, 재번역하고 피해를 겪은 작가들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일러스트를 교체하는 등의 일이 발생했다.

피해를 입은 이들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진정, 신고를 했고 각각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강남지청), "일러스트레이터의 성향 등을 이유로 용역계약 체결을 거부하거나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와 차별해서는 아니된다"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권고안은 말 그대로 '권고 조치'로 실효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이에 2018년 11월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피해를 입은 게임일러스트레이터 및 웹툰 작가 6인의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그 무렵 한 게임 제작사가 자사 게임 공지사항을 통해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가 리스트를 찾았다. 확인 후 문제의 여지가 있을 시 해당 일러스트를 전면 교체할 것이며 스튜디어 내부에 '외주 검주팀'을 신설해 사전 검수를 엄격히 강화하겠다"면서 일명 '일러스트레이터 블랙리스트'를 언급해 논란을 더 키웠다.

이들이 이처럼 피해를 입고 있는 이유는 이들의 신분이 정규직 보장을 받지 못하는 ‘프리랜서’라는 점에 있다. 인권위는 “게임이용자들은 작가 개인에 대한 사이버 괴롭힘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관여한 게임이나 웹툰의 불매운동을 벌이거나 게임회사 등에 해당 작가들의 작품을 사용하지 말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와 웹툰 작가는 대체로 게임 회사에 고용된 근로자가 아니라,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작품을 납품하는 프리랜서 신분이기에 이용자들의 퇴출 요구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정당한 회사들은 게임개발 중단, 캐릭터 및 디자인 변경, 작가 휴재 등 외부 요인에 대한 경영상 판단일 뿐, 작가들의 사상이나 온라인상 퇴출 요구와는 관계가 없으며 게임이용자들의 요구와 반응을 반영해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 것일 뿐 신념이나 사상,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차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기업의 이윤이 사회로부터 창출되는 것을 고려할 때 소비자의 요구가 인권, 정의와 같은 기본적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면 그 요구를 무시하거나 소비자를 설득, 제재하는 것이 책임있는 기업의 모습”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3월 한 게임업체는 유저들이 게임 제작에 참여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사상에 문제를 제기하자 "게임에 관련된 문의가 아닌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관련된 내용으로 파악되어 공식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 특정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에는 일체 반대한다"고 밝혀 모범 사례가 된 바 있다.

인권위는 ▲문체부의 관련 실태조사 실시 및 결과에 따른 해당 관행 개선 방안 마련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법적, 제도적 보호를 위해 문화예술진흥법의 '문화예술' 범위를 게임분야까지 확장하는 법률 개정 검토 필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의 업체 선정기준 개선 등의 대책 마련을 바란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등 단체들은 14일 기자회견에서 인권위 의견의 실천과 함께 "정부와 국회는 프리랜서를 포함한 사각지대 노동자를 보호할 방안을 마련하고, 게임업체는 게임 이용자의 반인권적 집단행동 옹호를 중단하고 피해자를 업계로 복귀시키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번 결정은 게임 업체들이 작업자의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직업 수행상 불이익을 주었음이 일정 부분 사실로 인정됐고,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업계에서 배제하라고 항의한 게임 이용자들의 요구가 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행위임을 다시 확인해줬다"고 하면서 "다만 피해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프리랜서라 조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해당 진정을 각하한 것은 문제이며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의 결단이 터무니없이 짧은 시효로 인해 무산된 것 또한 연장 개정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게임업체 페미니즘 사상검증 논란은 일부 유저들의 무분별한 비난과 이를 빌미로 프리랜서들의 자리를 뺏는 게임업체들의 무책임이 빚어낸 것으로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다.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인권위의 의견을 따를 지가 주목되는 가운데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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