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르포] ‘배수로 월북’, 폴리스라인·현장보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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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르포] ‘배수로 월북’, 폴리스라인·현장보존도 없었다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7.3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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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년, 19일 강화도 배수로 타고 월북
사건 발생 사흘째, 철조망 바리게이트만 달랑
연미정-유도 루트, 북한까지 헤엄쳐서 2.2km
배수문 곳곳에...초병 없이 카메라만 북녘주시
지난 29일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연미정 인근에 위치한 배수로의 모습. 군은 CCTV와 인근서 발견된 증거물품을 토대로 지난 19일 탈북민 김 모씨(24·남)가 해당 배수로를 통해 월북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사진=현지용 기자
지난 29일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연미정 인근에 위치한 배수로의 모습. 군은 CCTV와 인근서 발견된 증거물품을 토대로 지난 19일 탈북민 김 모씨(24·남)가 해당 배수로를 통해 월북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사진=현지용 기자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탈북민이 강화도에서 배수로를 통해 월북한, 이른바 ‘배수로 월북 사건’이 군과 정부를 뒤흔들고 있다. 야당에서 “귀신 잡는 해병대도 월북자는 못 잡나”라는 비난까지 나오는 가운데, 본지가 직접 본 사건 현장은 당일 날씨만큼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지난 19일 해병대 제2사단의 경계 구역인 강화도 월곶리 연미정 옆 배수로를 통해 탈북민 김 모씨(24·남)가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 씨는 2017년 수영으로 한강 하류의 강화도를 건너 월남했으나, 지난 6월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김 씨의 치밀함은 사전답사까지 하며 과거 자신의 탈북 경로를 다시 월북하는데 이용했다는 점에서 돋보였다. 하지만 그의 치밀함이 준 충격은 남북 모두를 뒤흔들었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넘은 26일 북한은 ‘코로나19 감염 의심의 월남자 귀향’이란 보도로 개성 봉쇄 및 최대비상체제로 전환했고, 한국 군과 경찰은 북한의 보도로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국방부 장관이 국회서 문책받았으나, 허술한 경계태세 실태는 2012년 ‘북한군 노크 귀순사건’보다 더 심각하단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 정부가 사건을 인지한지 사흘이 지난 29일, 본지 기자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실태를 알아봤다. 서울에서 강화군청까지 지하철과 시외버스 등 대중교통이 뚫려있어, 강화도 안팎으로 사람이 드나듦에 큰 애로는 없었다. 병인양요 격전지이던 성동검문소를 지나 도착한 강화 버스터미널에는 대부분 섬 바깥일을 보려 나가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간간히 휴가를 나온듯한 해병대원만이 눈에 띄었다.

연미정까지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강화도의 탈북민 이야기를 들었다. 지긋한 연세의 강화도 토박이라 자부한 택시기사는 “헤엄쳐서 북한 사람들 건너왔단 이야기를 꽤 들었다. 강화도 해안가는 다 철책으로 둘러있고 배수로도 막지만, 거기까지 군인들이 관리하진 않는 것 같다”며 “북쪽을 지키는 해병대도 다 합쳐 얼마 안돼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연미정 내 성곽에서 본 한강서해 하류 섬 유도(가운데)와 북한 땅의 모습. 사진=현지용 기자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연미정 내 성곽에서 본 한강서해 하류 섬 유도(가운데)와 북한 땅의 모습. 사진=현지용 기자

도착한 연미정은 장마라는 기상예보에도 십수명의 관광객들이 연미정 성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사흘 전 월북 소식에 관광객들은 비바람과 연무로 하늘이 탁해도 연신 한강 넘어 북녘을 바라봤다. 연미정 바로 오른편에는 소규모의 해병대 막사가 초소와 함께 문을 굳게 잠그고 있었다.

김 모씨가 월북한 배수로 바닥은 서해 연안의 특성을 보여주듯, 갯벌에 사는 바닷게가 한 가득이었다. 이곳을 비춘 연미정 CCTV로 김 모씨의 모습이 포착됐고, 이곳에서 그가 쓰던 가방과 달러 환전 영수증이 발견됐다. 그렇기에 사건 발생 장소인 배수로에 대한 군 또는 경찰의 경비는 국회에서의 질타만큼 전보다 한층 강화돼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띄었다. 월북이 국가보안법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최대 사형까지 받는 범죄임에도, 사건 발생 장소에 대한 현장보존이나 출입 통제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범죄현장에 걸어놓는 노란 띠의 폴리스라인조차 쳐져있지 않았다.

해병대에서 파견한 장교 1명만이 이곳을 방문하는 취재진에 대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건 보고가 이뤄진 후 인근 부대에서 해당 배수로 입구를 막도록 철조망 한 뭉텅이와 각목으로 만든 바리게이트만 쳐놨을 뿐, 바로 앞 해병대의 철책처럼 배수로 입구를 원천 차단하는 조치는 없었다. 배수로 철조망 너머 김 모씨가 힘으로 구부려 비집고 넘어갔다는 쇠창살도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연미정 언덕 위와 지도를 통해 김 모씨가 월북한 경로를 추정해봤다. 연미정 바로 맞은편이자 북한과 남한 사이에는 강화도에서 ‘뱀섬’이라 불리는 ‘유도’란 무인도 하나가 있다. 연미정에서 북한까지 헤엄친다면 4km에 달하나, 유도를 기착지로 활용하면 남한 영토에서 북한까지 헤엄치는 최장거리를 2.2km까지 단축이 가능하다.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연미정 내 성곽에서 본 강화도 북단 해안선과 북한 판문군의 모습. 사진=현지용 기자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연미정 내 성곽에서 본 강화도 북단 해안선과 북한 판문군의 모습. 사진=현지용 기자

조수간만의 차도 활용 가능해 보인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의 실시간해양관측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한강 서해지역 강화대교의 조위(潮位, 조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해수면 높이)는 지난 18일 오후 23시 28분 70cm로 가장 낮아지다가 19일 오전 4시 57분 640cm로 급격히 불어났다. 최단거리 루트와 썰물 시간대를 맞춰 해안선 철책 너머까지만 나간다면, ‘수영을 통한 월북’은 충분히 계산이 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강화 지역 해병대의 해안선 경계태세는 어떨까. 기자가 직접 연미정 넘어 강화도 북단으로 해안선을 따라 걸어봤다. 연미정처럼 눈에 두드러지는 배수로는 보이지 않았으나, 농지 옆으로 해안을 맞댄 배수문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해안선 철책의 대부분은 일정거리마다 군용 감시카메라와 라이트가 해안을 향하고 있었을 뿐, 29일 낮 동안 해안선을 순찰하는 경계 근무 초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안을 향한 초소와 지하 방공호 내부는 사람의 발길이 멎은 듯, 무릎 높이만큼 잡초가 수북이 자라있을 정도였다.

지난해 6월 삼척항 목선 귀순사건이 벌어진지 불과 1년 만에 키 163cm, 몸무게 54kg의 왜소한 청년 탈북민이 월북을 저지르고도 정부는 뒤늦게 이를 알았다. 이 같은 실태에 대해 문책만이 아닌, 최소한 수습하는 모양새라도 보이는 것이 상식의 선으로 예상 가능한 판단이겠다. 하지만 사건 발생 사흘이 지나고도 현장에 대한 보존 태도와 경비 실태는 정부가 ‘소를 잃고도 외양간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현 정권의 꿈이 정작 국가안보와는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날이었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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