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 참사, 권력 부패가 ‘폭발 경고’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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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참사, 권력 부패가 ‘폭발 경고’ 무시했다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8.0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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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선박 질산암모늄 2750톤, 압류 후 6년 간 방치
세관장, 2014년부터 사법부에 ‘안전 위험’ 서한 6번 발송
경고 묵살한 정부...법무부 장관, 시위대에 ‘물벼락’ 맞기도
뿌리 깊은 권력부패·경제위기, 안전불감증...참사로 이어져
사진=로이터
사진=로이터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베이루트 폭발 참사가 안전 관리 소홀에 따른 인재(人災)란 사실이 드러나자, 레바논 국민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고 있다. 오래된 권력 부패와 경제위기, 정부의 무능함이 이번 대폭발을 일으킨 주요 원인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현지시각) 오후 6시 8분 18초께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인근 베이루트 국제항구에서 보관 중이던 질산암모늄 2750톤이 폭발했다. 이 참사로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는 157명 이상, 실종자 80명 이상, 부상자 5000여명 이상이다. 이에 따른 이재민 수는 베이루트 인구 83% 수준인 최대 30만명, 재산 피해는 최대 17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 폭심지의 바로 옆 건물에 레바논 전 국민을 1주일간 먹일 수 있는 곡물 사일로가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축해놓은 막대한 곡물 창고가 폭발에 의해 날아가자, 라울 네흐메 레바논 경제 장관은 “레바논의 곡물 비축분이 한 달 치에 약간 못 미친다”며 국제사회에 식량난 위기를 호소하기도 했다.

레바논 당국과 외신 보도에 따르면, 폭발이 일어난 베이루트 항구 물류창고에는 레바논 정부가 러시아 소유의 몰도바 선적 화물선 ‘로수스(Rhosus)’로부터 압수한 대량의 질산암모늄이 지난 6년 간 보관돼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타스 통신 및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지난 5일(현지시간) 로수스호가 2013년 조지아 바투미항에서 출항해 모잠비크로 항해하던 도중, 수리 차 2013년 11월 베이루트 항에 입항했다. 그런데 파산에 따른 선박 소유주 분쟁이 벌어지자, 선장은 선박과 화물이 베이루트 항만감독관에 의해 억류됐음에도 선박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질산암모늄은 농업용 비료 또는 화약, 무기 제조, 폭탄 테러 등에 쓰이는 위험물질이다. 이 때문에 질산암모늄은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 연방정부청사 폭탄 테러, 2013년 미국 텍사스 웨스트 비료공장 폭발사고, 2015년 중국 텐진 항구 폭발사고 등 각종 테러, 폭발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베이루트 항만 측은 선박 압류 이후 보관한 질산암모늄의 위험성을 당국에 지속적으로 보고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베이루트 항구 세관 공무원들은 2014년~2017년 동안 레바논 법원 측에 질산암모늄 처분 지침을 요구하는 서한을 6차례 보냈으나, 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레바논 현지 언론은 “지난 달 20일 베이루트 항만 정기 점검 보고서에서도 질산암모늄 보관 창고가 훼손됐음에도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레바논 정부 당국이 위험 경고를 인지하고도 방치해 참사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레바논 국민의 분노는 정부를 향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베이루트 국민들은 시내를 나온 마리 클로드 나즈 법무부 장관에 대해 물병을 던지며 격하게 항의했다. 같은 날 레바논 국회 인근에서는 방화 및 약탈 등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거리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같은 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참사 현장을 방문해 프랑스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하며 “프랑스의 지원은 결코 부패한 자의 손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약속했다. 외국 정부 수반이 공개적으로 레바논의 개혁과 부패를 말한다는 것은 ‘레바논의 정치 실태가 인재를 불렀다’는 비판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참사와 정권 퇴진 요구의 원인은 정권 부패, 정부의 무능함이 안전불감증과 경제 위기 불만을 폭발시켰다는 해석으로 흐르고 있다. 경제의 경우 레바논 통화인 레바논 파운드는 지난해 10월 이래 80% 가량 가치가 폭락했으며, 국내총생산(GDP)의 경우 국가부채만 170%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른 만성적인 고실업률, 단전까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권력의 경우 레바논은 프랑스 위임통치 이후 1943년 마론파 기독교도, 수니파·시아파 무슬림, 드루즈교도 간의 권력 분할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1975년 레바논 내전,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세력 확대, 2011년 시리아 내전 등으로 권력 고착화와 경제위기를 연달아 맞고 있다.

특히 1943년 레바논 국민협약, 레바논 내전 이후 맺은 1989년 타이프 협정으로 레바논 정치 엘리트가 특권화 되면서 부정부패, 무책임 문제가 불거졌다. 이에 따른 안전불감증이 결국 질산암모늄 경고를 묵살했고, 결과적으로 폭발이란 대참사를 벌어지게 했다. 폭발 참사의 기원이 레바논에 뿌리 깊게 내린 전쟁, 경제위기, 권력 고착화로 인한 것이다.

레바논은 ‘중동의 스위스’, 수도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란 별칭으로 불렸다. 지중해를 접하는 지정학적 유리함과 독립국가란 이점, 서구권과 친화적인 문화적 특성으로 관광, 금융, 농업, 무역 등 부문에서 번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착화된 권력, 경제위기가 안전불감증, 이로 인한 폭발 참사를 일으켰단 사실은 레바논의 국가적 위상이 어느 정도까지 추락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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