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어느 한쪽이 조정을 독점해서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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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어느 한쪽이 조정을 독점해서 안된다”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0.08.1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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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장손무기가 외쳤던 권력 독점 경고 되새겨야
궁궐 주인은 임금이 아니라 궁궐 그 자체
주장환 논설위원
주장환 논설위원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당 태종 이세민의 외척이자 고종(이치)의 스승이기도 했던 장손무기의 메시지는 프로페셔널하다. 때로는 주판알을 튕기며 문중의 이익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당나라 번영과 안위가 최우선이었다. 무미랑(측천무후)이 당 황조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죽을 때까지 무미랑을 제거하려고 했던 이유도 당나라 사직의 보존이었다.

무미랑이 측천무후가 되기까지 그리고 장손무기가 죽을 때까지 당나라의 ‘오디세이’ 중 가장 극적인 장면은 장손무기의 몰락이다. 그 이유는 장손무기 죽음으로 무미랑이 측천무후가 되는 무풍지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당시 태종과 마찬가지로 고종도 장손무기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다. 고종은 장손무기의 말이라면 거의 무조건 받아들였다. 누군가가 장손무기가 반역을 꾀한다고 밀고하자 전후 사정을 묻지도 않고 바로 죽일 정도였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고종은 왕황후를 폐위하고 무미랑을 황후로 봉하려고 했다. 하지만 반대가 거세지자 무미랑은 신진세력인 이의부, 허경종 등 서인을 등에 업고 ‘장손무기 반란 사건’을 꾸며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무미랑으로서는 인생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장손무기가 이끌던 관롱파는 무너진다.

유배를 떠나면서 장손무기가 하는 말은 후세들의 ‘영감(inspiration)’과 ‘비감(pathos)’을 동시에 자아낸다. 그는 서인을 이렇게 비판한다. “지금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은 우리와 다르다, 갑작스레 권력의 단맛을 맛보았으니 사욕을 위해서라면 언제고 사직을 저버릴 수 있는 자들이다.” 비감을 만드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다음 말은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어느 한쪽이 조정을 독점해서는 안된다. 관롱파와 서인이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치국(治國)의 정도이다.”

돌아보면 장손무기가 무미랑을 처내려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의 가문이나 일신(一身)의 영화가 아니라 나라의 흥망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결국 그의 우려대로 무미랑은 새로운 황조인 무주(武周)를 열고 중국 역사상 전무한 여황제가 된다.) 장손무기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 여부를 떠나 그 당시에도 나라 경영의 정도(正道)가 무엇인지 알았다는 점이 우리를 각성케 만든다. 벼슬 자리나 정파의 이득보다 나라 전체의 안녕이 우선이라는 가치가 돋보이는 것이다.

궁궐의 주인은 임금이 아니라 궁궐 그 자체다. 임금이나 그 곳에 근무하는 사람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 아무리 몸부림처도 그 자리는 한 때다. 아무리 장엄한 곡조라도 그 끝이 있기 마련이다. “나라가 니꺼냐”라는 외침이 나오는 것은 들려오는 곡조를 묵묵히 듣고만 있던 침묵의 기간이 꽤 길었음을 방증한다. 오직 시비만 잘 가리는 정부는 백성을 피곤하게는 할 수 있으나 편안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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