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폐공사 '쪼개기 계약', 힘겨워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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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폐공사 '쪼개기 계약', 힘겨워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8.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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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출근 여부 통지받고 '22개월 계약'으로 10년 가까이 일해도 '일용직'
주휴수당 등 '일용직' 이유로 미지급, 노동자들 생활고 지속
정부 가이드라인 정면 위반에도 공사 "문제 없다"
사진=한국조폐공사
사진=한국조폐공사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한국조폐공사가 기간제법을 피하기 위해 여권 제조 및 발부를 맡은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22개월 쪼개기 계약'을 하고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각종 수당을 주지 않는 등 편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동자들은 수당과 함께 고용안정지원금도 받지 못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과 가이드라인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조폐공사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24일 "한국조폐공사에서 여권 제조, 발급, 판독검사를 담당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문자, 네이버 밴드 등을 통해 매일 출근 여부를 통지받는 '하루살이 고용 불안정'에 시달려왔다.  공사가 상시 업무 노동자에 대한 의무를 피하기 위해 계약 형태만 일용직 계약으로 하는 불법 또는 편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들 일용직 노동자들은 대전 테크노밸리에 소재한 조폐공사 ID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공사의 2019년 운영계획에 따르면 ID본부의 매출 목표는 약 1,280억원으로 전체 목표 4,910억원 중에서 최대 비중을 차지한다. ID 부문 중 여권 제조의 매출 목표는 약 970억원으로 단일 아이템 사업 기준으로 역시 최대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공사는 ID본부에 80여 명의 일용직 인력 규모를 유지했고 통상 60여 명이 하루 8시간 근무를 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여권 발급 수요가 감소하며 현재 15~20명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공사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2019년에는 네이버 밴드를 통해 "나오세요", "쉬세요" 등 문자를 통해 출근 여부를 통지받았고 올해는 '근로계약 미성립'이라는 말로 출근 여부를 확인받고 있으며 2019년 8월, 12월에는 51~58명이 일했지만 올 2월에는 36명으로 줄었고 현재는 단 10명만 일하고 있다.

지난 8월 21일 네이버 밴드. 공사는 밴드로 출근 여부를 통지했다. 사진=용혜원 의원실
지난 8월 21일 네이버 밴드. 공사는 밴드로 출근 여부를 통지했다. 사진=용혜원 의원실

공사는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자 여권 담당 노동자들의 출근 일수를 대폭 줄였지만, 이들은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휴업수당과 고용안정지원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맺은 근로계약서는 한국조폐공사 사장이 아닌 ID본부장이 당사자로 되어 있으며 "본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로조건이 변경되지 않는 한 2일차 이후의 근로계약서는 별도로 작성, 교부하지 않고 일자별로 일용근로자 연명부에 서명하는 것으로 하되 근로조건이 변경되는 경우 별도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교부한다"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해 용 의원은 "현재 근로기준법은 일용직을 포함해 기간의 정함이 있는 모든 근로계약에 대해 고용인은 '근로기간을 명시한' 근로계약서를 교부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공사의 주장대로 해당 노동자들이 일용직이라면 포괄적 근로계약서 대신 매일 근로계약서를 새로 교부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일용근로자'는 고용보험법, 소득세법, 통계청 근거에도 모두 적어도 3개월 미만 계약인 경우를 말한다.

포괄적으로 작성된 근로계약서에도 문제점이 발견됐다. 이들의 근로계약서에는 상시적 업무에 적용되는 주휴수당, 연차휴가수당이 규정되어 있고 채용공고에는 일용직 노동자에게는 불필요한 '고용만료월'이라는 계약기간 기술 등 상시적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공사는 업무 노동자에 대한 의무를 피하기 위해 계약 형태만 '일용직 계약'으로 하는 편법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용 의원은 "노동자들의 제보에 따르면 이들 비정규직들 상당수가 근로계약 체결 22개월에 이르러 계약해지를 당하고 3개월 정도의 실업급여 수령 이후 재계약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는 2년(24개월) 이상 연속 고용 시 정규직 고용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민간기업이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조폐공사의 근로계약서. 사진=한국조폐공사
조폐공사의 근로계약서. 사진=용혜인의원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근무기간이나 계약기간이 아닌 '당해 직무'를 기준으로 9개월 이상이면 상시 업무로 인정되며 수개월 단위로 기간제 근로자를 반복 교체 사용하는 경우, 일시적으로 근무가 면제되는 기간(예: 방학으로 인해 근무가 없어지는 학교 급식조리원)이 있는 경우라도 연간 9개월 이상 계속되는 업무라면 연중 계속되는 업무로 간주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또 '상시, 지속 기준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일 업무를 3개월 등으로 쪼개어 근로계약을 반복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라는 말도 적혀있다. 이렇게 되면 조폐공사가 22개월을 근무하고도 일용직을 유지시킨 것은 명백한 정부 정책 위반이 된다.

용혜인 의원실 관계자는 "22개월을 계약한 뒤 계약이 끝나면 실업급여를 3~4개월 타게 하고 다시 유경험자를 채용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다시 근무시켜 같은 상황을 반복했다. 노동자들 중에는 2011년부터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일을 한 분도 있다. 이 분도 일용직 신분"이라면서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공사는 주휴수당 등 법적 수당을 주지 않고 있고 긴급생활지원금도 비지급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고 있다. 공사는 자신들이 귀책사유가 없고 하루하루 단위 계약이기 때문에 다음날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은 일을 안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이 성립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휴일수당을 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조용만 조폐공사 사장은 지난 24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피감기관 업무보고에서 용 의원의 질의에 "여권 제조 업무가 줄었다 늘었다 하기 때문에 일용직을 사용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변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의원실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60명 내외로 일을 했고 인력풀이 80명 정도였는데 이번에 사태가 나면서 여행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지 이전부터 늘었다 줄었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의원실에서 매일매일 몇 명을 일용직으로 하는 것인지 자료를 요청하는데도 공사는 엉뚱한 자료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조폐공사는 지난 7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사문화 우수기업 인증'을 받았다. 2018년 7월 간접고용 근로자 125명의 자회사 정규직화, 청년채용 규모 확대, 블라인드 채용 강화와 함께 '정부 가이드라인 완벽준수'를 긍정적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었지만 이번에 공사가 가이드라인을 어긴 것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정부의 감사를 받는 공기업이 일용직 노동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잡았음에도 감독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가 어려워보인다. 

용혜인 의원은 "2019년 매출액 5248억으로 공사 최초로 매출액 5000억원을 넘어섰고, 당기순이익만 2791억원이다. 당기순이익률 16%로 웬만한 제조업체의 3~4배에 이른다. 여권 제조 수요는 줄었지만 온누리상품권, 지역사랑상품권 등 제작 수요가 2배 이상 늘어나 코로나19 이후에도 실적 증가가 예상된다.  또 2020년 7월말 기준 정원은 1486명이지만 현원(현재 인원) 1314명으로, 172명의 채용 여력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에 대해 조폐공사는 "법적인 검토를 진행 중에 있으며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는 경우 조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일용직 유지' 등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아보겠다'는 말로 즉답을 피했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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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 2021-02-02 16:34:13
후속기사가 궁금합니다....그래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코로나에 아줌마들도 잊혀진건가요?
그럼 정말 불쌍한데요....!
후속기사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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