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선거권' 얻었지만 '16세 선거운동'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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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선거권' 얻었지만 '16세 선거운동'은 안 된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9.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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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노동당 부산시당 위원장에 벌금과 '5년간 피선거권 박탈' 선고
노동당 "'자발적 선거운동' 주장 묵살, 엉뚱한 사람 범죄자 낙인"
"청소년을 여전히 '판단 미숙한 존재'로 보는 시각 문제" 법 개정 필요성 제기
지난달 27일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노동당 부산시당 기자회견. 사진=노동당 부산시당
지난달 27일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노동당 부산시당 기자회견. 사진=노동당 부산시당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법원이 최근 진보정당의 시당위원장에게 '16세 청소년에게 선거운동을 하도록 했다'는 이유로 벌금과 함께 피선거권 박탈까지 선고했다. 법원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이 판결이 청소년의 자발적 정치 참여를 막은 것이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청소년 당원이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한 것을 '지시'라고 판단하고 제재를 하지 않았다고 판결한 것도 문제지만 선거 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졌음에도 여전히 청소년을 '판단이 미숙한 자'라고 생각하는 기성 세대들의 편견과 청소년들의 정치 활동 및 정당 활동을 완전 불허하겠다는 판결이라는 점이 문제가 됐다.

지난달 20일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제1형사부는 공직선거법 위반을 이유로 배성민 노동당 부산시당 위원장에게 벌금 100만원과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선고했다. 총선 선거운동이 진행되던 지난 4월, 노동당 당원인 16세 김찬 군이 부산 사하구 당리동에서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선거운동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공직선거법 60조 1항 2호에는 미성년자(18세 미만)가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미성년자를 통해 선거운동을 한 사항으로 '정치적 판단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한해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직선거법의 입법목적을 훼손했고 선거운동을 한 미성년자와 유권자들에게 부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노동당 부산시당은 지난달 2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해당 청소년 당원에게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이 맞는지 추궁했고, 재판과정에서 재판장은 해당 청소년의 선거운동은 자발적이었고, 검찰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탄원서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듯한 태도를 취하며 비웃었다"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받아야하며 성숙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청소년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엉뚱한 사람을 범죄자로 낙인찍었다. 청소년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인 선거법을 무기로 향후 5년간 공직선거 출마를 봉쇄할 수 있는 수준의 처벌을 감행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재판의 당사자였던 김군은 회견에서 "만 18세 미만 청소년들은 공직선거법에 가로막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를 향해 지지를 호소하거나 자신이 지지한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다. 정치적 의사 표시는 선거권과 별개로 가장 기초적인 표현의 자유로 보장되어야함에도 청소년들에게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를 저지르지도, 선거를 방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노동당 지지를 호소했을 뿐인데 그 이유로 공포에 떨어야했고 저로 인해 재판을 받게된 위원장에게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청소년도 당당하게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고, 선거운동을 하고 나서도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청소년 녹색당은 지난 2일 논평에서 "이 판결은 노동당뿐만 아니라 녹색당을 포함한 많은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당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에서 활동하려면, 후보가 되려면 법정에 서서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다'는 모욕을 들어야한다. 이미 청소년은 촛불혁명, 선거 연령 하향 운동,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여러 정치적 이슈에서 목소리를 내왔는데 사법부만 모르고 있다. 청소년은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의식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총선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부터 선거권을 갖게 됐지만 선거운동이나 정치 활동에서는 여전히 '만 18세'의 벽이 높은 상황이다. 게다가 선거운동을 한 것에 대해 '누군가의 지시' 혹은 '강요 여부'를 계속 추궁했다는 것은 사법부가 청소년을 여전히 '판단이 미숙한 이들'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청소년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태의연한 의식으로 점철된 공직선거법 60조 1항 2호를 개정해야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청소년 녹색당은 지난 2일 논평에서 "이 판결은 노동당뿐만 아니라 녹색당을 포함한 많은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당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에서 활동하려면, 후보가 되려면 법정에 서서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다'는 모욕을 들어야한다. 이미 청소년은 촛불혁명, 선거 연령 하향 운동,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여러 정치적 이슈에서 목소리를 내왔는데 사법부만 모르고 있다. 청소년은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의식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계적으로 선거 연령이 낮아지고 있고 청소년 때부터 정치 활동을 해온 이들이 젊은 지도자로 각광받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점도 법 개정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아르헨티나는 2012년 만 16세로 투표 연령을 낮추는 법을 통과시켰고 독일은 지방선거에서 16세 선거권을 실현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헝가리 등은 만 18세가 되면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또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중학생 때부터 정당 활동을 했고 이글레시아스 스페인 사무총장은 14세부터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등 청소년 시절 정치 활동을 토대로 국정을 운영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청소년을 '판단 미숙,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 이번 문제를 촉발시킨 요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선거 연령이 낮아지고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현 시점에서 여전히 보수적인 정치계가 청소년들에게 문을 열어 줄 지 여부가 주목된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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