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성악도의 죽음, 문화예술노동자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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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성악도의 죽음, 문화예술노동자가 위험하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9.1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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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출 맡은 무대에서 추락사, ‘리프트 내린다’ 메시지 안 전해
김천시, 공연 책임자임에도 기소 안 돼, 사과 없이 ‘피해자 잘못’ 주장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등 필요”
호남오페라단의 창작극 '달하, 비취오시라'. 2018년 이 공연을 준비하던 박송희씨가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사진=호남오페라단
호남오페라단의 창작극 '달하, 비취오시라'. 2018년 이 공연을 준비하던 박송희씨가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사진=호남오페라단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 2018년 9월 6일 김천시문화예술회관. 이 곳에서는 다음날 공연 예정인 창작극 <달하, 비취시오라> 공연을 위한 셋업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작업 중 호남오페라단의 무대감독이 김천시문화예술회관 무대감독에게 무대 중간 바닥에 설치된 리프트를 1층으로 내려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회관 무대감독은 기계감독에게 리프트를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 시간, 조연출을 맡은 23세의 성악도 박송희씨는 무대 주변 도색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대 리프트가 내려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리프트를 내려달라는 오페라단 무대감독도, 회관 무대감독도 그에게 아무런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고 경고 메시지도 전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버려뒀다.

리프트가 내려가면서 무대 바닥에는 약 78㎡의 구멍이 생겼고 안전난간 등 추락방지를 위한 조치도 없었다. 그 상태에서 박씨는 색칠 작업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뒷걸음을 하다가 그 구멍에 빠저 6.5m 아래로 추락했다. 결국 성악가를 꿈꾸던 23세의 예비 예술인은 이처럼 어이없는 사고를 당했고 결국 9월 10일,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두 무대감독이 경고 메시지나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것과 함께 리프트 하강 시 작동하는 비상경보, 램프가 고장이 났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수리하지 않고 넘어가간 것도 지적됐다. 또 재판 과정에서는 김천시 문화예술회관 무대감독이 사고 직후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면서 남은 인원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행했다는 서류에 서명하도록 해 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1월 1심은 두 무대감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금고 10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천시 문화예술회관과 같이 3층 높이의 대공연장에서 추락방지를 위해 필요한 구조물의 설치를 호남오페라단 무대감독이 요청했어야했는데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이같이 판결했는데 판결문의 주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달았다.

"이 사건만을 놓고 본다면 안전조치 이행이나 비용부담의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이냐는 계약당사자들의 계약 내용에 따라 정해져야 할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천시도 엄연히 이 사건 극장에서 근로자를 사용하여 공연 사업을 하는 사업주에 해당하기에 작업 중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에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었다". 즉, 재판부는 주석을 통해 김천시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이 때 김천시는 이미 검찰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은 상황이었다. 김천시와 김천시문화예술회관이 관리 및 감독의무가 없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공연장 운용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을 공연단체에 전가시킨다는 것은 관리 감독의 주체인 김천시의 책임을 묵과한 것이고 안전교육을 했다고 조작했다는 진술이 나왔음에도 이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김천시와 김천시문화예술회관은 사과는커녕 책임을 오히려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술회관 무대감독은 항소를 제기하면서 "극단에서 제출한 스케줄에 협조했을 뿐이고 피해자에게 화를 내서라도 작업을 중지시켰어야한다"며 책임을 호남오페라단에 돌렸고 김천시는 "피해자가 굳이 뒷걸음질을 쳐서 확인해야할 정도로 공연장이 어둡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부주의를 해서 사고가 난 것이기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족들이 김천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은 김천시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김천시는 "무대감독이 1심의 사실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배상 책임도 그 이후에 확정해야한다"며 항소를 한 상태다.

박씨의 사망 2주기를 앞둔 지난 9일 공공극장안전대책촉구연극인모임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온라인을 통해 '공공극장 무대의 안전과 위험의 외주화'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사망 뒤 2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무대예술노동자들의 문제를 짚어내면서 안전보건 강화를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김진이 독립기획자는 "주요 공공극장의 안전 관리 지침을 검토한 결과 '사람' 중심의 안전 지침이 간과되어 있어 이는 지난 추락사고와 같이 '일반적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피해자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관련 당국에 대관 계약 관계 및 안전 책임, 의무 규정을 재구성하는 '공공극장 표준 안전 관리 지침'을 제정하고 보급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또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故 박송희님은 호남오페라단과 정식 계약도 맺지 않은 상태에서 일했고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라고 지적하고 "위험의 외주화가 가져오는 필연적인 문제 중 하나는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에 관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전조치를 할 수 있는 구너한과 책임이 있는 원청은 법적 책임을 빠져나가고, 원청이 법적 책임을 진다고 해도 안전, 혹은 해당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말단 노동자만 책임을 진다"고 밝혔다.

최민 활동가는 이어 "산업안전보건법을 공연예술인에게도 적용하고, 문화예술인의 산재 보험 보장을 현실화해야하며 일하는 사람의 안전도 책임지는 '공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연의 책임자가 일하는 사람의 안전도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고 이를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무런 안전 대비 없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상황은 문화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고 이 때문에 젊은 예술인 지망생이 죽는 일까지 벌어졌음에도 지자체나 극장들이 외면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현실이다. 사망 2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문화예술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는 무대를 사랑하는 젊은 예술인들이 채 꿈을 펼치지 못하고 어이없게 죽어야하는 상황을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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