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성범죄자의 감형 도구”? 실상은 배제·철회 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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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성범죄자의 감형 도구”? 실상은 배제·철회 多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09.2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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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서 성범죄 무죄율 18%...감형 도구화”
“‘성인지 감수성’ 부족...성범죄 사건은 국참 배제해야”
10년간 국참 ‘배제·철회’ 60.9%, 성범죄 사건은 75.4%
여론 80.6% ‘국참 확대해야’...부족한 건 재판참여 기회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국민참여재판이 성범죄자의 감형 도구로 쓰인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실제 통계는 오히려 높은 비율로 성범죄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 실시를 배제·철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심제란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형사사건 재판에 직접 참여해 유·무죄 및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법관이 이에 따른 형량을 판단하는 제도다. 고대 그리스에서 태어난 배심제는 12세기 영국에서 그 모습을 갖추고 인류사에 등장했다.

배심제는 미국, 영연방 국가 등에 뿌리 깊게 내려져 있다. 미국의 경우 재판의 꽃이자 시민의 의무 중 하나로 여겨진다. 미국은 18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배심원을 무작위 선출해 재판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지정 숙박시설에서 지내게 하는 등, 재판의 공정성과 기밀보호를 위한 보안을 엄격히 하고 있다.

미국의 배심제를 보여주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 작품은 1957년 베를린 영화제 수상작인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다. 영화는 배심원간의 치밀한 논쟁과 합의를 보여주며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에 근거해 재판을 해야 한다는 사법체제의 대의를 강조한다.

한국은 2008년에야 국민참여재판이란 이름으로 배심제가 처음 도입됐다. 반면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은 사건에 대한 배심원의 의견을 판사에게 권고하는 수준일 뿐, 미국처럼 배심원들이 유·무죄를 결정하거나 판사의 양형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하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국민참여재판의 존재 가치가 미미한 수준만은 아니다. 한국 형사재판에서 판사의 권한이 절대적일지라도 시민사회의 보편적 가치관,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증거재판주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완전히 거스를 수만은 없도록 제동장치 역할 또한 하기 때문이다.

그런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성범죄자의 형량 감소 도구로 악용된다’는 주장이 여성계, 언론에까지 퍼지고 있다. 특히 2010년대 ‘성인지 감수성’이란 개념이 사회에 퍼진 후부터 제기되는 양상이다. 근래 판사의 자유심증주의에 의해 형사재판에서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어겨지고, 성범죄 무고 피해가 양산된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에도 말이다.

해당 이의제기들의 주된 근거는 이러하다. 지난 19일 YTN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참여재판 중 성범죄의 일반 재판 무죄율은 2.4%인 반면 국민참여재판 무죄율은 18%이니,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의미이자 국민참여재판의 성범죄 감형 도구화”라는 분석이다. 심지어 모 여성계에서는 “성범죄 사건에만큼은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해야한다”며 형사소송법의 공정정, 국민참여재판의 도입 의의를 부정하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사진=한국형사정책연구원 ‘형사정책과 사법제도에 관한 평가연구(ⅩⅢ) - 국민참여재판 시행 10년차 평가와 정책방안 연구’ 발췌
사진=한국형사정책연구원 ‘형사정책과 사법제도에 관한 평가연구(ⅩⅢ) - 국민참여재판 시행 10년차 평가와 정책방안 연구’ 발췌

그런데 관련 연구결과에 따르면 실태는 이러한 이의제기들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띄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국민참여재판 시행 10년차 평가와 정책방안 연구’ 자료에 따르면, 2008~2018년 동안 접수된 전체 국민참여재판은 6243건, 실시된 건은 2447건(39.2%)인 반면 배제·철회된 건수는 3796건(60.9%)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범죄 형사재판에서의 국민참여재판은 더욱 적은 상황이다. 국민참여재판에 접수된 성범죄 재판 1451건 중 실시된 건수는 358건(24.7%), 배재 445건(30.7%), 철회 648건(44.7%)이다. 배제·철회를 합한 비율만 전체의 75.4%다. 국민참여재판제도가 도입 이래 실제 실시된 국민참여재판, 특히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의 실시는 오히려 더 적다는 의미다.

성범죄 사건에서의 국민참여재판 무죄율을 제도가 가진 한계 또는 부작용이라거나 별개의 요소로 단정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성범죄 사건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은 그 ‘높다’는 비율만큼 전체 국민참여재판의 실시 건수, 특히 성범죄 사건 국민참여재판의 실시 건수 또한 무죄율의 수치만큼 높아져야 한다는 정비례 조건에 봉착한다.

한국법제연구원이 조사한 ‘2019 국민법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 대상자 3441명 중 법관이 ‘헌법·법률에 따라 재판한다’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전혀 그렇지 않다’, ‘별로 그렇지 않다’ 합산)’고 답한 비율은 32.4%에 달했다. 반면 ‘법관의 재판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58.6%를 보였다. ‘국민참여재판이 확대돼야한다’는 질문에 ‘그렇다(‘대체로 그렇다’, ‘매우 그렇다’ 합산)’고 답한 비율은 80.6%까지 치솟았다.

배심제-국민참여재판은 판사·검사·변호사에 의한 비밀 재판, 재판의 조작·왜곡을 감시하고 사법 불신을 막으며 사법체계의 민주적 정당성, 당대 시민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을 세운다는 의의로 도입됐다. 통계 또한 한국 시민사회 전반이 ‘국민참여재판 확대를 원한다‘는 여론을 보여주고 있다.

사법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도입된 배심제는 배심원에게 사법부가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반드시 지키고 바로 세우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한다. 한국도 시민 참여로 사법정의를 실현한다는 같은 의의로 국민참여재판제를 도입했다. 그런 국민참여재판을 ‘법 감정’이라 포장하거나, 시민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에 부합되지 않는 일부 사상으로 폄하할 때 국민참여재판의 도입 의의, 나아가 사법정의는 퇴색된다. 한국 시민사회에 부족한 것은 ‘성인지 감수성’이 아닌, 더 많은 국민참여재판 참여의 기회이겠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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