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 합헌’ 뒤집은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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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 합헌’ 뒤집은 법원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09.2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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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격 안마사 고용한 업주에 무죄 판결 “직업선택 자유, 행복추구권 침해”
한국마사지사총연합회 “시각장애인만으로는 한계, 변화 받아들여야"
대한안마사협회 “헌재 ‘생존권 우선’ 전혀 생각하지 않은 판결"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집회, 사진=뉴시스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집회.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법원이 최근 시각장애인이 아닌 이들이 안마사 일을 하면 처벌을 받게 되는 현행 규정이 부당하다는 내용의 판결을 했다.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허용하는 의료법과 이를 네 차례나 합헌으로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판결과는 배치된 내용의 판결이 나오면서 안마사를 비시각장애인에게도 합법적으로 허용해야한다는 의견과 시각장애인의 고유 영역으로 놔둬야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중이다.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에 약식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서울 강남구에서 마사지 업소를 운영하면서 시각장애인이 아닌 무자격 안마사들을 고용해 영업을 해 지난해 8월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됐고 A씨가 이에 불복하면서 정식 재판이 열렸다.

현행 의료법 82조는 시각장애인에 한해 안마사 자격을 부여하고 있으며 '안마사의 업무한계, 안마시술소나 안마원의 시설 기준 등에 관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또 보건복지부령은 '안마사에 관한 규칙'에는 안마사의 업무 범위를 '안마, 마사지, 지압 등 각종 수기요법이나 전기기구의 사용, 그 밖의 자극요법으로 인체에 물리적 시술행위를 하는 것'으로 규정해 사실상 모든 안마를 포함시켰다. 이로 인해 안마사는 시각장애인만 할 수 있으며 안마사 자격 없이 영리 목적으로 안마를 한 경우에는 3년 이하 징역형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업자들이 네 차례나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는 모두 합헌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해당 조항은 시각장애인의 생계를 보장하고 직업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그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비시각장애인에게 운영을 허용할 경우 상대적 약자인 시각장애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하거나 저임금에 시달리는 등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시각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항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번 재판에서 재판부는 "자격 안마사에게만 허용된 안마의 범위가 모든 안마를 포괄해 비시각장애인에게는 사소한 형태의 안마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 같은 규정은 가벼운 안마마저 무자격 안마로 처벌해 의료법의 위임 목적과 취지에 반하고, 처벌 범위가 부당하게 확장돼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안마, 마사지 시장 수요가 폭증하고 종사자가 최소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자격안마사는 1만명도 채 되지 않는다"면서 "안마사 규칙은 비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하고 다양한 안마를 선택할 수 있는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업주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그동안 헌법소원을 이끌었던 한국마사지사총연합회의 관계자는 "안마, 맛사지의 영역이 점점 확대되고 남녀노소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웰빙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를 소수의 시각장애인 안마사에게만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다. 스트레칭 같이 시각장애인이 할 수 없는 분야도 있고 안마사로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이 고액의 벌금을 물고 정부 몰래 불법으로 영업을 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고  당연히 이런 판결이 나왔어야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어 "비시각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뺏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안마 바우처'(60세 이상 노인, 장애인 등이 약간의 부담금만 내고 시각장애인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강화해 시각장애인들이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해외 사례처럼 자판기 판매권이나 복권방 등 나라가 운영하는 것을 시각장애인이 위탁판매할 수 있도록 하며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지압, 비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스트레칭을 맡은 등으로 배분을 하면 충분히 상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반면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을 대표하고 있는 대한안마사협회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한안마사협회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에서 그동안 네 차례나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장애인이라고 봐준 것이 아니라 '생존권'이 '직업 선택의 자유'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판사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헌재에 재정신청을 해서 부당성 여부를 물어봤어야하는데 이를 거치지 않고 이런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단 1%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현행 법대로 제대로 처벌하고 보호했다면 지금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무자격 안마사들의 영업이 적발되어도 소액의 벌금형에 그치다보니 불법 영업이 성행하게 됐다.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시술소를 차리고 안마 영업을 하려 해도 단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자격증을 받아도 수입이 적고, 전망이 없고, 일은 힘들다. 결국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중증의 한정적인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사로 일하고 있는데 이들도 코로나19로 영업을 중단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은 이들이 이제와서 '비시각장애인 안마사를 허용하라'고 말하고 있고 왜곡된 정보와 장애인 생존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번 판결이 나왔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잇달은 합헌 판결로 일단락됐다고 봤던 '비시각장애인 안마사 허용' 문제가 헌재의 판결을 뒤집은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직업 선택의 자유'와 '장애인의 생존권'이 충돌하고 의료법 82조의 개정 및 폐지 요구까지 나오는 등 여러 문제가 섞여 있어 논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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