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낙태죄 존속시킨 정부, 여성계 “전진 아닌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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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 낙태죄 존속시킨 정부, 여성계 “전진 아닌 퇴행”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10.0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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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14주 이내 전면 허용, 15~24주 조건부 허용’ 골자
‘낙태 처벌’ 형법 27장 유지, 획일적 임신 수주 기준 문제로 지적
박능후 “낙태를 죄로 규정한 건 헌법, 모자보건법은 처벌 없다”
지난달 24일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4일 대학생 페미니즘 연합동아리 '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위헌'으로 결정한 이후 정부가 7일 낙태죄의 부분 폐지를 골자로 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개정안마저도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낙태법을 존속시켰다는 비판이 나왔고 여성계에서는 '임신중절에는 허락이 필요없다'면서 낙태죄의 전면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개정안은 임신 14주 이내에는 일정한 사유나 상담 등 절차 요건 없이 임신한 여성 본인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고 임신 15~24주 이내에는 기존 모자보건법상 사유 및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명시한 '사회적, 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가 가능하도록 했다. 즉 임신 14주 이내에는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15~24주에는 조건부 허용을 해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또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실현의 최적화를 위해 임신 24주 이내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의 경우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상담 및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했으며 낙태 방법을 '의사가 의학적으로 인정된 방법'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약물이나 수술 등 의학적 방법으로 시술방법을 구체화해 시술방법의 선택권을 확대했다.

앞서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헌법재판소는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야한다"며 임신 22주를 기준으로 제시했으며 개정안에는 이 부분이 반영이 됐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이 낙태에 대해 '제한적 허용'을 했을 뿐 낙태에 대해 처벌이 가능한 부분을 남겨놓았다는 점에서 사실상 기존 낙태법을 존속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낙태의 비범죄화를 위해 형법 27장을 폐지하는 개정안을 마련하라"면서 낙태죄를 폐지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형법 27장(낙태의 죄)은 낙태를 죄로 규정한 것으로 낙태를 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정책위는 "신체적 조건과 상황이 개인마다 다르고 정확한 주수를 인지하거나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에도 획일적 임신 주수 기준으로 형벌을 부과하거나 면제하는 것은 형사처벌 기준의 명확성에 어긋난다"면서 "처벌 규정은 태아 생명보호와 모체 건강보호를 목적으로 하는데 제반 사정에 비춰 태아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출생, 성장할 수 없는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아 많은 여성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음성적 방법으로 낙태를 하고 있어 목적과 상반된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개정안은 정책위 권고안과는 달리 낙태 처벌을 규정한 형법 27장을 그대로 살려 사실상 낙태죄를 존속시킨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정책위의 우려처럼 획일적 임신 주수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실효성 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6일 서지현 검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낙태죄가 두려워 낙태 않는 여성은 없다. '불법화된 낙태'로 고통받는 여성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실효성 없는 낙태죄 존치가 아닌 실효성 있는 제도와 정책으로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낙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위해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기출생 생명'인 여성의 생존을 위한, 존재 자체를 건 결정이다. 생명을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국가가, 그런 사회를 만들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다른 노력 없이 그저 그 여성을 범죄자로 낙인찍어 처벌하려해서는 안 된다"며 개정안을 '위헌적 법률 제정'이라고 비판했다.

또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원치않는 임신, 출산으로부터 안전한 임신중단을 원하는 당사자 여성의 목소리와 낙태죄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국민인식 변화에도 부합되지 않는 결정이다. 그간 사문화되고 위헌성을 인정받은 낙태 처벌 규정을 되살려낸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라며 역시 비판 의견을 냈다.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이번 법은 찬성하는 여성계와 반대하는 종교계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합의된 개정안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문화될 것이 뻔하다"면서 "임신 15주를 넘긴다면 처벌을 하는 것이냐"라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질문했다.

이에 박능후 장관은 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낙태를 죄로 규정한 건 형법이며 형법 개정에 따라 낙태가 죄가 될 수도, 안 될수도 있다. 모자보건법상에는 처벌 규정이 없다. 모자보건법은 형법에서 허용한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어떻게 임산부의 건강을 지킬지를 규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바른인권여성연합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에서 "낙태 허용기간을 '임신 14주 내외'로 한다고 하지만 낙태의 95.7%가 사실상 임신 12주 이내에 이루어지고 있다. 개정안은 사실상 낙태죄 폐지와 다를 바가 없다"며 앞의 주장과 다른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생명권은 자기 결정권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면서 "정부는 태아의 주수를 말하기 전에 많은 여성들이 낙태 대신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먼저 제공해야한다"고 밝혔다.

낙태죄가 헌법에 불일치하다는 판결에 많은 여성들이 환호성을 냈지만 형법을 바꾸지 않고서는 낙태죄 폐지가 어렵다는 정부의 입장이 나오면서 여성계는 '전진이 아닌 퇴행'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국회 내에서도 이 법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고 있다. 반면에 '태아의 생명권 존중'을 이유로 이번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연말까지 법 개정을 완료하기까지 많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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