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칼럼] 그래도 명종은 언로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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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그래도 명종은 언로를 지켰다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0.10.1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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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남명 조식의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는 기세가 드높다. 대쪽같으며 서릿발이 감돈다. 읽는 사람의 간담이 서늘해진다. 명종은 수차례 남명을 중앙 정치판에 끌어 들이려 했다. 그러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오기가 생긴 명종은 정 그러면 동네에서 벼슬하라며 경남 산청의 현감 자리를 내렸다. 그러나 남명은 이마저도 뿌리치며 이른바 ’단성소(丹城疏)‘라는 을묘사직소를 올린다.

남명은 글에서 “나라의 근본은 없어졌고 하늘의 뜻도 민심도 이미 떠나버렸다. 큰 고목이 백 년 동안 벌레에 먹혀서 그 진이 다 말라버렸으니 언제 폭풍우를 만나 쓰러질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일갈하면서 “오장육부가 썩어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한 사람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시 서슬이 퍼렇던 문정왕후와 임금까지 탓한다. 남명은 “대비는 신실하고 뜻이 깊다 하나 구중궁궐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는 아직 어리시니 다만 돌아가신 임금님의 한 고아에 불과하다”며 한탄해 마지 않는다. 요샛 말로 하면 ‘국가원수 모독’이다. 이 정도면 ‘대깨문’이라도 용서받지 못한다.

이 글을 본 명종은 화가 머리 끝까지 차 올랐다. 당장 아작을 내고 싶었다. 신하들도 "아무리 임금이 어질지 못하기로서니 욕을 퍼부어서야 되냐?"며 남명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언로(言路)가 막힌다는 주장이 먹혀 들어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래도 명종은 간언(諫言)의 소중함을 알고 언로를 지켰던 것이다.

이 해프닝을 요즘 우리와 비교해 보면 당시 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2월 ‘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를 고발한 일과 최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고발하고 으름장을 놓는 일 등을 보면 더욱 그렇다. 비판을 듣기 싫어하고 언로를 끊으며 화를 내는 일이 잦은 것은 민주주의라는 뼈대가 삭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연산군이 자신을 비난하는 백서와 투서가 곳곳에 붙자 한글 사용을 금지하고 한글로 된 책을 불태운 일을 잘 알고 있다. 참으로 고단하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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