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공황 때문”? 해경이 말하는 ‘월북’의 앞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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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공황 때문”? 해경이 말하는 ‘월북’의 앞뒤
  • 현지용 기자
  • 승인 2020.10.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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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연평도 공무원 총격 사건에 대해 해양경찰청이 피살 공무원의 도박 이력과 실종 당시 정황을 근거로 ‘현실도피성 월북’에 무게를 둔 분석을 내놓아 파장이 예상된다.

해경은 지난 22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산하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 모씨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김태균 해경 형사과장은 이 씨의 과거 도박 사실과 실종 당시 전후 정황을 세세하게 밝혔다.

해경은 이 씨가 실종 전인 출동 도중까지도 어업지도선 동료 및 지인 등 주변인 30여명에게 꽃게 구매 대행 대금을 받고도 이를 도박계좌로 송금하는 등 도박을 했다고 설명했다. 해경은 “이 씨는 2차례에 걸쳐 대금을 받았음에도 이를 모두 도박 자금으로 사용했다. (실종 전날인) 지난 20일 당직 1시간 전까지도 도박자금을 탕진했다”며 과거 수억원 대의 인터넷 도박 사실도 밝혔다.

그러면서 실종 당시의 정황도 제시했다. 해경은 “실종자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붉은 색 계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실종자 침실에서 3개의 구명조끼가 보관돼있었다는 진술도 있었다”며 “B형(붉은색) 구명조끼가 침실에서 발견되지 않은 점을 미뤄보아 해당 구명조끼 착용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나, 무궁화10호 구명조끼에 대한 정확한 관리가 되지 않아 특정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번 해경의 브리핑을 종합해 분석할 때 이번 당국의 발표는 이 씨의 실종 및 북한 해역에서의 발견을 월북에 무게를 두고, 그 근거를 이 씨의 도박 이력으로 보면서 ‘공황상태로 인한 현실도피성 목적의 월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발표는 이 씨의 유가족과 야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씨의 친형인 이래진 씨는 23일 복수의 언론을 통해 “진단서도 없는 상태에서 동생을 두고 정신적 공황상태라 판단하고 사실인 것처럼 추정해 월북 결론을 낸 것”이라며 해경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고소를 예고하고 나섰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해경이 또 다시 명예살인을 자행했다. 해경 발표의 핵심은 ‘한국에서 인생 힘들면 월북한다’는 궤변을 만든 것”이라며 “객관적 증거 하나 없이 ‘정신적 공황상태로 월북했을 것’이란 뇌피셜까지 동원해 희생자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해경을 향해 “몽상소설 창작단이 돼 구조해야할 국민의 명예를 난도질했다. 희생자 아들에게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줄 것이라 한 대통령의 약속을 무참히 짓밟은 격”이라면서 “해경은 희생자의 명예 훼손과 사회적 매장에만 혈안이 돼있다. 그래야 국민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해경의 분석을 단순 수사결과에 대한 발표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피격 공무원의 도박 이력과 실종 당시 전후 정황이 곧 숨진 이 씨의 공황상태 또는 현실도피성 심리로 확정지을 근거는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형국이다.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기관이 방어권이 없는 사자에 대해 내놓은 이 같은 발표는 사자명예훼손죄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해경의 발표가 올해 정치권을 뒤흔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사건 및 성범죄 의혹과 비교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SW

hjy@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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