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칼럼] 동물국감,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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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칼럼] 동물국감,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이 필요하다
  • 오세라비 작가
  • 승인 2020.10.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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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오세라비 작가] 2020년도 국정감사 마지막 날이다. 이달 7일부터 26일까지 열린 국감은 시민사회에 무엇을 남겼을까. 국감은 국회의원이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국민을 대표해 국가기관의 정책과 운영 상황을 감시하고 실태를 파악하는 일이다.

올해 국감은 연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국민들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가운데 열렸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비상한 각오로 열과 성을 다하여 겸손한 자세로 국감에 임해야 했다. 그러나 역시 기대난망(企待難望)이었다.

174석을 차지한 거대여당, 18개 국회상임위원회를 모조리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 국감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우려가 된 것도 사실이었다. 역대 국감치고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거대 정치권력을 가진 집권당이니만큼 무한 책임을 지는 자세로 국감에 임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민생은 신음하고 있다. 설상가상 정부여당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말미암아 전세대란까지 터졌다.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 전셋값 폭등이 이어지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여전히 미해결이다. 5000억원대 투자 사기 옵티머스 펀드 사태는 또 어떤가. 펀드 투자자 명단에는 거물 금융인, 유력 정치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정·관 로비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행보는 여전히 정가를 흔들고 있다. 추 장관은 헌정 사상 세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사실상 배제한 것과 다름없다. 지난해 터진 라임펀드 사기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1조6000억원대 피해를 입혔다. 그러자 국감장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라임펀드사의 로비 의혹에 관련된 야당 인사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질타가 쏟아져 나왔다.

지난 22일 국회서 열린 대검찰청 국감은 가히 ‘동물국감’이란 말을 들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국감 일정 내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차에 종료를 며칠 앞두고 국감장은 소란스러웠다. 여당 의원들은 국감에 출석한 윤 총장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등 시종일관 격앙된 분위기였다.

특히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윤 총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임기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묻는 질문에 윤 총장은 “임기는 취임하면서 국민과 한 약속이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추 장관과 윤 총장간의 갈등이 향후 계속될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런 와중에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한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국민 불안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이어 독감 백신마저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질병청은 사망과 백신 간 인과성은 없다며 접종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수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의 노랫말이 절실히 다가온다.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애절함과 애환이 담긴 통렬한 가사는 10대, 초등학생까지 즐겨 부르는 국민가요가 됐다. 테스형 커버 송 경쟁까지 유튜브를 달구고 있는 중이다.

기원전 470년 고대 아테네에서 태어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향해 질문을 던졌던 나훈아의 심경에 국민들은 크게 공감했다. 소크라테스 대화법은 ‘무지의 지(자신의 무지함을 스스로 깨닫는 앎)’를 깨우칠 때까지 끈질기게 문답을 끌어가는 방식이다. 그는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고 대화하며 토론했다. 그의 대화법에 아테네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당시 혼란을 거듭하던 아테네 정국은 소크라테스를 희생양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위정자들은 상호간의 비판을 금하는 법률을 공포했다.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은 비판을 동반하기에 이는 곧 아테네 정치를 위협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명망과 영향력 또한 위정자들에게는 위험인물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유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나훈아는 ‘테스형’을 통해 소크라테스에게 문답을 청한다.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그의 노래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데는 혼란한 시대에 답을 구하지도, 또 답을 주지도 못하는 인물의 부재와 그러한 세태를 대변하는 것에 있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아테네는 민주정의 위기였다.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두 쪽으로 나뉘어 적대적인 대립을 일삼았다. 그는 이런 시기에 끈기 있게 대화했다. 문답으로 아테네 사회에 ‘무지의 지’를 깨우치는 것이 그의 철학적 소명이었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은 절대 권력을 쥐고 있음에도 이러한 혼미한 시대에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시민사회는 차라리 나훈아의 ‘테스형’에 열광하며 위로를 얻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정치는 왜 이렇게 할 수 없는 건가? 정치권이 ‘무지의 지’를 깨우칠 날은 언제쯤일까? SW

murphy8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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