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추모문화제' 불허한 종로구, '기준은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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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추모문화제' 불허한 종로구, '기준은 無'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11.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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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위원회 '정치적 행사' 해석, 예술계 '독단, 블랙리스트' 반발
종로구 "집회 성격 띨 수 있어 불허, 결정 따를 수밖에 없다"
승인 기준 '공원 조성 목적 위배 여부', 자세한 내용 없어 기준 '애매'
지난해 1월 열린 故 김용균 추모문화제. 사진=뉴시스
지난해 1월 열린 故 김용균 추모문화제.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서울 종로구가 오는 12월 12일로 예정된 '김용균 추모문화제'를 '정치적 행사'라는 이유로 불허한 것에 대해 행사를 주최하는 한국작가회의가 '문화예술 검열행위'라고 비판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종로구는 '재논의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불허 결정의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고 승인을 결정짓는 기준조차 없어 '주먹구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용균재단 등 90개 노동 및 예술단체로 구성된 '김용균 2주기 추모위원회'는 2018년 12월, 산재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의 2주기를 추모하는 행사를 12월에 진행할 예정이었다. 12월 6일 추모주간 선포를 시작으로 워크숍, 토론회, 태안화력발전소 현장 추모제 등이 진행되고 12월 12일에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한국작가회의 주관으로 작가들의 시낭송회, 낭독노래극 상연 등이 진행되는 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종로구는 지난 18일 한국작가회의에 '마로니에공원 야외공연장 대여 신청을 불허한다'고 통보했다. 공원녹지과 심의위원회에서 문화제를 '정치적 행사'라고 해석해 승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작가회의는 "심의과정에서 행사 내용에 대한 그 어떤 확인도 없었다. 한국작가회의에서는 종로구청 문화과와 심의부서인 공원녹지과에 문의하고 재검토를 요청했으나 그들은 불허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주최 측은 이번 문화제를 '정치적'이라고 해석한 위원회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작가회의는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한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작가들과 예술인들의 문화제는 정치적인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공연장 심의위에서 대여를 불허한 것은 아무런 판단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결정한 독단적 횡포였다. 이는 사회참여적인 문화예술을 블랙리스트로 규정해 불법 사찰 검열, 배제해 왔던 전임 정부의 블랙리스트 공작과 다를 바 없는 폭거이자 만행"이라고 비판했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故 김용균을 추모하는 문화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생명과 노동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행사다. 그러한 문화행사를 '정치적'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종로구청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 노동 인권 관련 사건을 그저 공안 사건으로만 보았던 권위적인 문화행정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다"면서 "종로구청은 이제라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한국사회가 나아가는 민주사회로의 변화에 동참하여 이번과 같은 사건을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종로구는 '마로니에 공원은 정치, 상업, 종교적 행사는 승인을 제한해왔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과거 이 곳에서 장애인 단체들의 집회가 진행된 적이 있었고 인권영화제, 장애인영화제 등 문화 행사가 진행된 사례가 있기에 이번 결정이 '뜻밖'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종로구 관계자는 "문화행사로 신청을 했지만 위원회에서 '집회나 시위의 성격을 띨 수 있는 행사'라고 생각해 공원 성격에 맞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고 위원들 만장일치로 승인을 하지 않았다. 결정이 나온 이상 구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불승인 이유에 대해서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구는 "민간 전문가, 공무원 등으로 위원회가 구성됐으며 회의록을 따로 작성하지 않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한편 '서울특별시 종로구 도시공원 운영에 관한 규칙'에는 '공원의 조성 목적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따라 승인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위배 여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없어 승인 기준이 부재한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종로구 측은 "그때 그때 상황을 봐서 위원회가 결정을 하는 데 기준이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쪽으로 생각할 수 있다"라며 이 문제를 인정했다.

논란이 커지자 종로구는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문화제의 성격을 다시 한 번 짚어보자는 말이 나왔고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논의를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며 재논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예술계에서는 문화제 개최와는 별개로 종로구의 사과와 문제에 대한 사실 확인,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송경동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은 "종로구가 이번 행사를 '정치적'이라고 단정짓고 일방적으로 승인 불허를 통보한 것은 전 정권의 '블랙리스트' 탄압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면서 "재논의를 거쳐 개최가 확정된다면 코로나 확산 여부에 맞춰 문화제를 진행하겠지만 그와 별개로 종로구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사태에 대한 사실 확인과 관련 책임자의 문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밝혔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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