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984년생, 나는 '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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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1984년생, 나는 '낀대'다.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0.11.2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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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의 꼰대질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저렇게 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1990년대생 후배들 사이에서 점점 '젊은 꼰대'가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사진=셔터스톡
기성세대의 꼰대질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저렇게 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1990년대생 후배들 사이에서 점점 '젊은 꼰대'가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사진=셔터스톡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오후 5시30분. 퇴근시간을 30분 남겨놓고 부장이 벌떡 일어나 '번개 회식'을 제안한다. "선약 있어요"라는 누군가의 선창(?)을 시작으로 줄줄이 거절하는 신입들의 모습이 이제는 익숙하면서도 씁쓸하다. 

'저 나이때 나는 무조건 따라갔는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후배들에게 '꼰대' 소리를 들을까봐 오늘도 조용히 마음 속으로만 곱씹는다. 30대 후반, 나도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꼰대'가 될까봐 후배들의 눈치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 출생자를 일컫는 'Y세대' 중에서도 1980년대생들이 회사의 주요 실무를 책임지는 중간관리자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나 역시 기성세대의 꼰대질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저렇게 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1990년대생 후배들 사이에서 점점 '젊은 꼰대'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일례로 부서 막내가 '휴가 5일'을 올릴 때, 회식 자리에서 술 한 잔 받지 않는 후배를 볼 때, 주말에는 카톡 확인을 하지 않는 신입을 볼 때 '라떼가' 떠오른다. 

최근 취업포털 사이트 '사람인'에서 직장인 19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75.4%)은 '우리 회사에 젊은 꼰대가 있다'고 답했다. 1990년대생들에게 이른바 '젊꼰(젊은 꼰대)'은 '늙꼰(늙은 꼰대)'보다 더 공포스러운 존재라고 한다. 

50대 간부들은 여기저기서 '꼰대는 되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 의외로 잘해주지만 오히려 30대 중·후반 선배들이 '막내가' '신입이' '요즘 애들은' 등의 말을 달고 산다는 것. 

또 50대 간부들은 20대와 세대가 완전 다르니 아빠뻘이라고 생각해 잔소리를 해도 이해해보려는 마음이 생기지만 대여섯 살 많은 '젊꼰'들의 꼰대질은 이해가 안된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갑질'은 하고 싶은데 '꼰대' 소리는 듣기 싫은 게 전형적인 '젊꼰'의 행태라는 것인데, 30대 후반의 나도 '젊꼰'에 속하는 지 자문해봤다. 내 대답은 '아니요'다. 굳이 말하자면 원조 꼰대인 기성세대와 개인주의적인 1990년대생 사이에 끼어버린 세대 '낀대'라고 말하고 싶다. 

베이비붐 세대(1955년~63년 출생)의 자녀들인 1980년대생들은 경제 성장기에 태어났지만 학창 시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부모세대가 좌절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대학 졸업 후에는 청년실업의 벽에 가장 먼저 부딪힌 세대이기도 하다. 

때문에 위로는 기성세대를 이해하고, 아래로는 할 말 다하는 후배들이 부럽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선배들은 '1990년대생은 세대가 다르다'고 이해하면서도 1980년대생까지는 꼰대 문화 적용을 당연시 여긴다.

나 역시 입사할 땐 당찬 신입이었고, 할 말은 하는 성격으로 선배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상하관계가 철저한 기자생활을 하다보니 '꼰대' 문화가 몸에 밴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위로부터의 압박과 아래를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감 사이에서 사회의 규범과 조직의 질서에 순응하는 편을 선택해 '라떼는 말이야'라고 입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이다. 

무엇보다 내가 '낀대'를 자처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선배들의 '꼰대질'이 반갑고, 갑작스런 선배의 번개에도 군말 없이 튀어나가 술 한잔 기울이는 그 시간이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당당함이 매력적인 후배들이여, 마지막 '꼰대 전선'은 '낀대'가 지킬테니, 우리 서로를 응원해보지 않을텐가. 안 그래도 세상은 삭막하고, 일방통행은 외로운 법이니까.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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