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분위기, '사형제 폐지' 현실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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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분위기, '사형제 폐지' 현실 되나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0.12.3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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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유엔 '사형집행 유예 결의안' 기권에서 '찬성'으로 변화
유럽연합 헌재에 '사형폐지 의견서' 제출, 천주교 현직 주교단 전원 서명
'흉악범 사형 필요', '실질적 사형 폐지, 명문화 의미 없다' 존속 가능성 아직 높아
지난 11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정문에서 진행된 '세계사형반대의 날' 조명 퍼포먼스. 사진=천주교인권위원회
지난 11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정문에서 진행된 '세계사형반대의 날' 조명 퍼포먼스. 사진=천주교인권위원회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수에서 사형이 집행된 이후 23년이 지난 이 시간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오랜 기간 동안 사형제의 존치와 폐지를 놓고 여러 의견이 있어왔고 사형을 폐지하려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사상 최초로 유엔의 '사형집행 유예 결의안'에 찬성하고 유럽연합이 헌법재판소에 사형제도에 대한 공식 의견서가 처음으로 전달되는 등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중이다.

지난 11월 17일 뉴욕에서 열린 75차 유엔 총회 본회의에서 우리나라가 사상 최초로 '사형집행 모라토리움(유예) 결의안' 최종 승인에 찬성했다. 지난 2007년 사형집행 유예가 처음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뒤 여덟번째 만에 우리 정부가 찬성 입장을 밝힌 것이다. 법무부는 "대한민국은 지난 23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면서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이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라는 국제사회의 인식, 결의안에 대한 찬성국이 꾸준히 증가한 점 등을 감안해 이번 결의안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이 결의안에는 △지속되는 사형 집행에 깊은 우려 표명 △사형 집행에 대한 점진적 제한 및 아동, 임산부, 지적장애인에 사형 선고 제한 요청 △사형이 선고될 수 있는 범죄 축소 요청 △투명하고 공정한 사면 심사 보장 △자유권 제2선택의정서(사형제 폐지) 가입 고려 요청 △사형제 폐지를 염두에 둔 모라토리움 선언 요청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담겨있다. 

물론 이 결의는 권고적 효력을 가지기에 사형제를 폐지하거나 형법을 변경할 의무는 없다. 법무부는 "사형제도 폐지 여부는 국가형벌권의 근본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이기에 사형의 형사정책적 기능, 국민 여론과 법감정, 국내・외 상황 등을 종합해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그동안 사형 유예 결의안에 계속 기권표를 던졌던 우리 정부가 처음으로 찬성표를 행사했다는 점에서 사형제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국제사회에서 사형제도 폐지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0년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 폐지국은 96개 국가였으나 올 5월 기준 107개 국가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등 국제사회는 우리나라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면서 "정부도 대한민국이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라는 국제사회의 인식을 감안했다고 밝힌 만큼 이번 찬성 표결은 우리나라가 사형제 폐지를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3일에는 유럽연합(EU)이 사형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처리할 헌법재판소에 사형제도 폐지 의견서를 보냈다. 에이먼 길모어 인권특별대표는 "EU 회원국들은 사형제를 폐지했다. 사형이 수감보다 범죄 억제 효과가 크지 않으며 공공의 안전에도 기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면서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을 포함한 162개 국가에서 사형이 한 건도 집행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진행 중인 이번 헌법소원이 대한민국 역시 형법제도에서 사형제를 완전히 없앰으로써 점점 늘어나고 있는 사형제 폐지 국가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 9일에는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27명의 현직 주교단 전원이 서명한 '사형제도 폐지 의견서'가 헌법재판소에 전달됐다. 한국 천주교 현직 주교단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고 세계인권선언은 사형제를 '생명권을 침해하는 비인간적 형벌'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강력범죄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하지만 극단적 형벌이 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사형제 폐지야말로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는 훌륭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도 지난 2000년부터 8번의 사형폐지법이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중 지난 20대 국회 당시 사형폐지 특별법을 발의했던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다시 '사형 폐지에 대한 특별법안'을 마련해 발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생겼다.

이처럼 사형제 폐지에 대한 종교계와 정계, 해외에서의 목소리가 나오고 세계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하는 나라들이 늘어나면서 폐지 쪽으로 무게가 실리지만 여전히 '흉악범에게 사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높고 이미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 된 상황에서 굳이 폐지를 법으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시각도 존재하기에 사형제 존속 가능성은 아직 높은 상황이다.

특히 지난 6월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흉악범죄나 반인륜범죄로 사형이 확정된 이에게는 6개월 이내에 반드시 사형을 집행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하는 등 국회 내에서도 사형제를 놓고 서로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폐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실질적 사형 폐지국'을 벗어나 완전한 사형 폐지국으로 가야한다는 여론과 지금처럼 '사형제는 존속시키되 사형을 시키지 않으면 된다'는 여론, 반드시 사형이 필요하다는 여론 등이 맞서며 오랜 기간 사형제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헌재의 판단이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사형 폐지가 늘어나고 있는 국제 사회의 눈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형제 존속 혹은 폐지 문제가 내년에도 사회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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