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처형이후엔 ‘위대한 영도자’로
김일성-김정일과 어깨 나란히 ‘총비서’
[시사주간=양승진 북한 전문기자] 분홍색 저고리(핑크레이디)를 입은 78세의 리춘희 아나운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라고 칭한다.
그동안 국무위원장으로 불린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0일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6일차 회의에서 총비서로 추대돼 북한 최고지도자 직함을 또 바꿨다.
북한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해 사실상 ‘영구 결번’처럼 대우했으나 김정은이 이를 뒤집어 아버지(김정일), 할아버지(김일성)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가 됐다는 것을 국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총비서 직함을 내밀었다.
◇ 2008년부터 후계자 ‘샛별장군’ 칭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8년 뇌졸중 발병 뒤 2009년 고영희와 사이에서 낳은 김정은(金正恩)을 후계자로 내정했고, 2010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되게 함으로써 후계 구도를 확정했다.
어린 김정은은 고영희씨가 살아 있을 때 ‘샛별장군’으로 불렸는데 이때부터 실명 대신 ‘김대장’으로 불리며 북한 내부에서 후계자로 부각됐다. 2009년 1월 초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하고 그 결정을 담은 교시를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하달하면서 북한의 후계구도가 정리됐다.
김 위원장의 우상화 사업은 2009년 5월 김정일이 김정은의 9살 생일선물로 노래를 주면서 시작된다. “척척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대장 발걸음”이라는 행진곡풍의 이 노래는 김정은 찬양가 ‘발걸음’이다. 여기서 김대장은 김정은을 지칭한다.
또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넜다’는 것에 맞춰 김정은은 ‘세 살 때부터 총을 잡고 표적판을 명중시켰다’는 선전을 했다.
성인이 된 뒤에는 <김정은 위대성 교양자료>를 통해 김정은이 전연군단(휴전선 인근부대)에서 1년간 군복무,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포병학부를 나온 ‘포사격의 귀재’, 김일성종합대학 컴퓨터 관련학부를 졸업하고 CNN(컴퓨터수치제어)을 개발해 인민생활 향상에 기여했다는 것도 선전했다.
◇ 27세 첫 공식직함 인민군 대장
김정은의 공식 데뷔 무대는 2010년 9월 27일 인민군 대장(27세)이었다. 다음 날인 28일 제3차 조선노동당 당대표자회에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중앙위원회 위원, 인민군 대장 직함을 달고 나타났다. 그해 10월 9일에는 당창건 65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주석단에 올랐다.
김정일 사망 이후 100일 간의 추모 기간이 끝난 2012년 4월 4차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서 당 제1비서 겸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장으로 추대됐다.
2012년 4월 열린 제12기 5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은 제1비서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선출됨으로써 당과 군의 실질적인 수반으로 자리매김했다. 다시 이틀 뒤인 100회 ‘태양절’을 맞아 김정은은 제1비서 자격으로 김일성 광장에서 군 열병식을 개최하고, 첫 공개연설을 통해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대내외에 공식 선포했다.
김정은은 당 중앙군사위원장, 최고사령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겸직함으로써 각각 당 중앙군사위원장·총정치국, 최고사령관·총참모장·각군 사령부, 국방위원회·인민무력부라는 채널을 통해 군의 3대 핵심조직을 직접 통수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2012년 7월 17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공동명의로 김정은에게 원수 칭호를 수여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7개월 만이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중대보도 예고까지 해가며 원수 칭호 수여 소식을 전했는데 이는 유일지배체제의 최고지도자로서 그의 위상을 과시하면서 권력 장악력을 다지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됐다.
◇ 장성택 처형 이후 ‘위대한 영도자’
정권 세습 이후 김정은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이나 ‘최고 영도자’로 불려왔다.
그러던 것이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즈음에 ‘위대한 영도자’ 호칭이 붙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에 집권한 뒤 ‘위대한 영도자’로 불렸던 것처럼 김정은도 호칭이 바뀌었다. 장성택 사건을 겪으며 주민들을 더욱 강력하게 통치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2013년에는 수령 칭호를 쓰기 시작했다. 그해 6월 19일 김정은이 ‘당·국가·군대·근로단체·출판보도부문 책임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을 기점으로 ‘위대한 영도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수령’이 등장한다. 김정일 시대에서 조차 김정일에게 ‘수령’이라고 부른 사례는 많지 않았는데 선대의 유산을 승계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2016년 5월에는 36년 만에 제7차 당대회를 통해 김정은을 ‘노동당 제1비서'에서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하며 당 조직을 개편했다. 비서국 조직과 비서 직제도 이때 없어졌다. 같은 해 6월 헌법을 개정해 국무위원회를 신설했다. 이 시기부터 김정은의 공식 호칭은 국무위원장이 됐다.
제7차 당 대회를 통해 대내적으로는 ‘정상국가’로의 지향, 대외적으로는 ‘국가핵무력 완성’(추구)에 기반한 ‘전략국가’라는 위상 그리고 대남 차원에서는 ‘통일강국’이라는 새로운 국정목표를 드러냈다.
◇ 당8차대회서 ‘총비서’로 추대
지난해 4월 11일에 개최된 제14기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은 대의원에 포함하지 않는 대신 1차 회의 직후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 호칭을 사용해 명실상부한 국가의 대표임을 강조했다.
2019년 4월 15일 ‘태양절’에도 새로운 호칭이 등장했다. 김정은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보도한 노동신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김정은은 지난 1월 10일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6일차 회의에서 총비서로 추대돼 북한 최고지도자 직함을 또 바꿨다.
총비서는 당의 최고책임자 지위여서 국가수반인 주석 또는 수령으로 지위가 격상될 가능성이 높다. 언제 또 그의 직함이 바뀔지 모를 일이다. 주석은 총비서, 주석 겸직이 가능하고 주석은 총비서 겸직이 가능하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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