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실내 적정온도 법제화' 거부한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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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실내 적정온도 법제화' 거부한 법무부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1.01.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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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권고에 "시설 신축 등 과제 해결되면 저절로 달성"
법률단체들 "혹서기 열사병 사망 등 우려, 실내온도 준수 '국가 책임' 명시해야"
최근 발표 '향상 방안'에도 적정온도 문제 제외
지난 2016년 두 명의 수용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한 부산교도소. 사진=뉴시스
지난 2016년 두 명의 수용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한 부산교도소.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최근 법무부가 '교정시설 수용거실의 실내 적정온도 기준을 법제화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거부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법무부는 "시설 신축, 과밀수용 해결되면 자연히 이루어진다"며 법제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지만 법률단체들은 "적절한 온도 유지가 되지 않을 시 혹서기 열사병 사망 등의 우려가 존재하기에 실내온도 준수가 국가의 책임임을 명시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9년 12월 '2019년 교정시설 방문조사에 따른 수용자 인권증진 개선 권고'를 통해 "(형집행법 등) 관련 법령에 수용거실의 실내 적정온도(여름철 최고온도와 겨울철 최저온도) 기준을 마련하고 교정기관에 수용거실 적정온도 유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또 혹서기, 혹한기에 수용거실 실내온도의 측정 방식, 측정 시간대 및 주기, 기록의 보관의무 등과 관련된 규정과 수용 거실의 크기, 수용 인원을 고려해 차등적으로 선풍기를 설치하는 근거를 마련해 시행할 것과 단수 조치를 물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를 개선할 다른 모든 수단을 소진한 후 최후에 시행할 것 등도 법무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법무부는 "적정한 실내온도 준수는 과밀수용 해소, 교정시설의 신축 및 현대화를 통한 냉난방시설의 완비 등 중장기적 과제가 해결될 때 자연히 달성되는 사안이지 단순히 적정 실내온도를 법제화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인권위의 '법제화' 권고를 거부했다.

법무부는 "오히려 냉방시설 등 적정 실내온도를 준수할 수 있는 설비가 완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법제화를 추진할 경우, 적정 실내온도 미준수에 따른 각종 국가배상 소송 등이 제기될 우려가 있고, 외국 입법례에서도 실내온도의 범위를 수치화하여 제시하고 있는 경우를 찾기 어렵고, '난방' 등의 설비를 마련해야한다는 수준에 그쳐 있다"며 '법제화' 권고 거부 이유를 전했다. 

다만 법무부는 "현행 형집행법은 실내온도와 관련해 '난방 시설을 갖추어야한다'는 규정밖에 없어 실내온도 준수와 관련된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는 권고는 타당하다"면서 "적정 실내온도 준수를 위한 국가의 의무를 선언적으로 밝히는 규정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권고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등 인권법률단체들은 지난 22일 법무부의 권고 거부를 전하면서 "기후위기의 시대, 수용자에게 '적절한 온도가 유지되는 공간에서 생활할 권리'는 생사를 가르는 문제다. 법무부의 계획처럼 형집행법령에 '실내 적정온도 준수를 위해 노력하여야한다'는 규정만 신설하면 교정시설 냉난방은 소측의 재량에 따라 예산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혹서기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재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는 교정시설 거실에 충분한 난방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수용자들의 건강권 등이 침해되고 있다는 헌법소원에 대해 "사건 교정시설에 라디에이터 등 간접 난방시설이 설치되어 운용되고 있음이 인정되고 형집행법 및 관계 법령을 모두 살펴봐도 피청구인에게 위와 같은 작위의무가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8월, 1인당 1.74㎡ 면적의 부산교도소 조사수용실에 갇힌 수용자 2명이 하루 간격으로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혹서기, 혹한기 사고가 발생하면서 '적정 온도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2019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폭염으로 교도소 수용자들 건강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위스콘신주는 온도가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 감옥에 냉방시설을 설치하라는 법원 명령을 받아냈으며 미시시피주는 체감 온도가 화씨 90도(섭씨 32.2도)를 넘으면 선풍기와 얼음물, 매일 샤워할 권리를 제공하는 법원 명령을 받아낸 바 있다.

또 볼티모어 시 구치소에서는 열 관련 상해에 더욱 취약한 수감자들을 위한 보호 장치를 확보했고 애리조나주의 마리코파 카운티 구치소에서는 특정 종류의 약물을 복용하는 수용자들을 화씨 85도(섭씨 29.4도) 이하의 온도로 유지되는 수용실에 수감하라는 법원 명령을 받아내는 등 적정 온도에서 수용자들이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법률단체들은 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법무부는 국가배상 소송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실내 적정온도 기준 및 이를 준수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임을 법령에 명시하고, 명시된 적정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냉난방 설비를 갖춰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 20일 '인권 중심의 수용자 처우 향상방안'을 발표하면서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 수용자 의료처우 향상, 수용자 보호장비 사용 등 개선, 보호실 및 진정실 운영과 시설 개선 등을 권고했다. 특히 보호실과 진정실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설치기준(채광, 통풍, 재질, 심리적 안정을 고려한 장치 등 포함), 설치장소, 기관별 설치 수량에 대해 점검하고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면서 "인권을 존중하는 교정행정 구현의 기반 마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도 수용자들의 '적정 온도에서 살아갈 권리'는 빠져 있다.

최근 동부구치소 등 교정시설에서 코로나 확진이 발생하면서 과밀수용과 시설 노후화 등으로 '방역의 사각지대'가 됐음이 알려진 상황에서 수용자들이 혹서기, 혹한기에 건강을 해치지 않을 권리를 챙겨줘야한다는 주장이 조금씩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가 법제화보다는 '시설 개선'에 더 무게를 두고 있어 인권위와 법률단체들의 주장이 관철되기는 현재로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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