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가스라이팅’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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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가스라이팅’을 아세요?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1.02.0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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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스등'. 사진=MGM
영화 '가스등'. 사진=MGM

[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오늘은 연극 이야기 두 가지부터 하겠습니다.

첫 번째, 여전히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는 연기자, 일일드라마 주연도 했던 탤런트 P가 대학로에서 연극 작품을 연출, 자기 돈 들여 제작까지 맡았습니다. 탐구와 도전정신이 강한 사람이어서 이상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르친 제자도 출연했기에 총 리허설 때 갔습니다. 초청된 몇 사람과 함께 봤는데, 눈매 밝은이들 훈수를 청하려는 의도로 그들에게 최종 숙제검사를 받는 자리이었습니다.  

야단인지 칭찬인지 모를 두루뭉술한 평이 서넛 나왔는데, 연기자 C는 대번에 이렇게 말해버리더군요. “요 따위가 연극일까 모르겠네. 첨 한다 해도 그렇지, 이게 뭐냐고?! 에이 낯 뜨거워! P의 다음 작품을 한 번 더 보긴 할 게요.”

진짜 낯이 활활 탄 건 저였습니다. C를 대동한 사람은 저였기 때문입니다.

나중 술자리서 정말 꼴 사나운 충돌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P “전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연극연출입니다. 다음은 없죠.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좋은 덕담이나 듣고자 했는데, 너무 심하게 꼬집는 말씀이어서...”
C “아니 뭐, 아낌없는 조언을 하랬잖아?!”

두 번째 연극은 오래 전 영국 런던에서 공연된 <가스등>입니다.
아내 “집안이 어두워요 여보. 가스등 불을 낮췄나요?”
남편 “당신 눈이 나빠졌나 봐. 잘못 본 거야.”

사실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어뒀고, 어두워졌다고 말하는 상대 탓을 합니다. 고개 갸우뚱 하던 아내는 점차 자기 자신에게 허물이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불신하게 됩니다. 아내의 유산을 몰래 먹으려는 남편의 계략으로 나온 심리적 술수였죠.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심리학용어가 됐습니다. 정신적 학대의 일종으로,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어서요,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죠. 

대체로 친구나 가족, 배우자, 연인 거기에 제자, 신자처럼 아주 가까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데, 피해자의 공감능력이나 동정심, 온순한 성품 등이 악용됩니다.

나중에 연극연출을 했던 P씨는 흐느끼며 아주 자조적인 말을 하더군요. “맞아! 내 주제에 무슨 연출이야. 송충이에게 솔잎도 과분하지 뭘 다른 걸 먹어보겠다고, 이 짓을 했는지...”

그 연극은 몇 차례 저조한 관객 입장을 기록한 채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P는 가끔 화면에 등장합니다만, 전 그가 무슨 역을 해도 연기에 자신 없어 보이고 얼굴에도 핏기 없음을 느낍니다. 그때의 충격이었을까...?

유재석과 조세호의 아기자기한 토크가 참 재밌는 방송 <유 퀴즈 온 더 블록>, 이런 게 있었습니다. 한 초등학생 친구의 ‘띵언’에 두 능수능란한 진행자의 입이 닫히고 다음 말을 못 찾더군요. “잔소리는 왠지 기분 나쁜데요, 조언은 더 기분 나빠요.”

허점에 대한 증거제시가 정확하고, 지극정성으로 고쳐주고 결과에 대해 책임까지 지려면 해도 되겠지만, 섣부른 핀잔으로 끝나는 조언이나 충고가 많습니다.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인데...’, ‘너 잘 되라고 해선데...’, ‘집안을 위해서 이 말은...’, ‘이게 후배 사랑인데...’, ‘예뻐서 그랬어.’, ‘내가 해봐서 알아.’ 등등. 이 말 뒤에 나오는 다음 말이 과연 약이 될까요?

더구나 <가스등>의 남편처럼 속임수를 무슨 사랑 깃든 고언(苦言)으로 위장하는 조언(助言)이나 충언(忠言)은 듣는 상대를 죽이기도 하는 무서운 말이 됩니다.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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