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문(畵文)'의 어울림, 예술인의 어울림, 그 온기가 느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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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문(畵文)'의 어울림, 예술인의 어울림, 그 온기가 느껴지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1.02.0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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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김환기, 달밤, 1951, 종이에 유채, 50×50, 개인 소장
김환기, 달밤, 1951, 종이에 유채, 50×50, 개인 소장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금은 자주 보기 어려워졌지만 이전에는 신문마다 연재소설이 삽화와 함께 실렸다. 삽화는 소설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했고 그날 연재분의 핵심을 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어쩌다 야한(?) 그림이 나오면 그 내용을 확인하려고 이전 내용도 모르면서 그날 연재분을 읽었던 기억도 있다. 그 기억을 떠올릴 전시가 이번에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4일부터 덕수궁관에서 선보이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1930~50년대 미술과 문학의 어울림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다. 서양의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등이 전해지기 시작한 1930년대, 시인과 소설가와 화가들이 어울리며 시와 소설을 화가들이 그림으로 표현하고 작가가 직접 자신의 소설에 삽화를 그리는 등 '지적 연대'를 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인쇄 미술의 성과를 볼 수 있는 '지상(紙上)의 미술관'. 사진=임동현 기자
인쇄 미술의 성과를 볼 수 있는 '지상(紙上)의 미술관'. 사진=임동현 기자

전시는 1934년 이상이 경영했던 다방 '제비'로 시작한다. 이상의 죽마고우였던 화가 구본웅, 자신의 소설에 직접 삽화를 그린 박태원, 추상화의 대표 화가 김환기 등과 함께 이들에게 영향을 준 르네 클레르와 장 콕토의 '활동사진'(영화)이 어우러진다. 잡지 <문장>의 실질적 발행인이었던 조풍연 작가의 결혼을 축하하며 길진섭, 김환기, 김용준, 정현웅 등 화가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기원하는 그림들을 남긴 화첩은 문인과 화가의 인간적인 교류를 상징하고 있다.

특히 마치 영화를 찍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삽화를 그리고 르네 클레르의 영화를 패러디한 글과 삽화를 남긴 박태원의 흔적이 인상적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극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장 콕토를 롤모델로 삼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참고로 그의 외손자가 바로 영화감독 봉준호다.

김소월, 진달래꽃, 매문사, 1925,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김소월, 진달래꽃, 매문사, 1925,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이들의 그림과 자료를 살핀 후에는 방대한 '인쇄 미술의 성과'를 볼 차례다. 앞서 언급한 30~50년대 신문 연재소설과 삽화들을 한 자리에 모은 공간을 살피게 된다. <금삼의 피>, <흙>, <탁류> 등 연재소설 속 삽화가 글과 함께 선보이며 '문화일체(文畵一體)'의 모습을 보여주고 근대기에 나온 책들의 표지도 이 공간에서 볼 수 있다. 특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집의 초판 표지, 백석의 유일한 시집인 <사슴>의 표지 등 '보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음 공간은 '이인행각(二人行脚)', 문인과 화가들의 개별적인 관계를 살피는 곳이다. 백석의 글과 정현웅의 그림이 어우러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김용준이 그린 소설가 이태준의 초상화, 김환기가 함께 술을 먹던 시인 김광균에게 바로 건네줬다는 <달밤>, 그리고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됐다는 절망감 속에서도 친구 가족의 밝은 모습을 그렸던 이중섭의 <시인 구상의 가족>이 있다. 일본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 속에서 가톨릭에 귀의하려한 이중섭이 구상에게 보낸 도움의 편지가 마음을 울린다.

마지막은 글과 그림을 모두 사랑했던 이들의 작품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근원수필>로 유명한 수필가이자 화가인 김용준, <강가의 아틀리에>라는 수필집을 쓴 장욱진, 그림과 함께 감정에 솔직한 수필을 남겼던 천경자 등의 작품이 나오고 김환기의 '화문'으로 전시 관람이 마무리된다.

이중섭_시인 구상의 가족, 1955, 종이에 연필, 유채, 32×29.5cm, 개인 소장
이중섭_시인 구상의 가족, 1955, 종이에 연필, 유채, 32×29.5cm, 개인 소장

<미술이 문학을 만날 때>는 화문이 하나로 어울렸던 1930~50년대를 살피면서 그들의 어울림이 문학에, 미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관람객들에게 전하는 전시다. 치열한 토론과 싸움이 있었지만 술 한잔에 감정을 풀고 손을 잡았던 이들, 작품을 통해 서로 연대하고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았던 예술인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전시다.

한편으로는 '인쇄 미술의 성과'를 집대성한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한 공간에 방대한 자료들을 밀집해 일일이 살펴보는 데 시간이 걸리는 점이 관람객들에게 피로감을 줄 우려가 있고, 작가들의 에피소드가 부각되지 않아 사전 지식이 없는 관람객들에게는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는 부분이 존재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와 시인들의 그림과 시를 본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본다면 오히려 더 많은 재미를 안길 수도 있는 전시다.

전시는 5월 30일까지 열린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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