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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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정희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1.02.0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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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싀
사진=뉴시싀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이제와 생각하니 배우 윤정희 씨와의 인연은 가슴 아픈 일이 되어 버렸다. 25여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프랑스에서 귀국한 윤 씨가 신문사로 필자를 찾아왔다. 의아해 하는 필자에게 그녀는 영화 한 편 만들려고 하는데 최진실 씨를 꼭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 씨는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그런데 1960~70년대 최고의 스타였던 그녀가 햇병아리 스타인 최씨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톱스타라 하지만 연기에는 아직 물이 덜 오른 최 씨를 왜 염두에 두고 있냐고 물었다. 윤 씨는 망서리다가 “대중은 연기보다 인기에 더 민감하다. 최고 인기스타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영화의 작품성도 중요하지만 흥행도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는 돈을 대는 제작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속내가 들어 있었다.

어느 배우인들 작품성을 흥행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윤 씨도 흥행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제작자의 마음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영화 전성기였던 60~70년 대 당시 인기 가도를 달리던 트로이카 여배우들(윤정희, 문희, 남정임)과 신성일, 박노식, 장동휘 등 톱스타들은 하루에도 수 편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하곤 했다. 이러니 작품성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하루 종일 이 촬영장, 저 촬영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밤을 새기 일쑤고 끼니 거르기도 예삿일이었다. 그런 세월이 후다닥 지나가 버렸던 것이다.

윤 씨는 아마 이런 세월이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파리로 건너가 영화 공부를 다시 하면서 많은 사색의 시간을 가졌던 그녀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제대로 된 작품을 하나 해보자고 했다. 그러다 좋은 시나리오가 눈에 띄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최 씨의 캐스팅은 불발됐다. 당시 최 씨의 매니저이던 배병수 씨와 제작자 측에서 제시한 출연료 문제가 해결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다른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영화는 흥행 실패로 끝났다. 세간의 주목도 크게 받지 못했다. 윤 씨는 매우 상심해 했다. 그리고 그녀는 프랑스로 다시 떠났다. 그러나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그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절치부심하던 그녀는 2010년 영화 <시>로 그 꿈을 이뤘다. 그 해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진가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녀의 나이 66세였다. 이 영화는 흥행에는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그녀가 파리에서 방치된 채 투병 중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기에는 남편인 백건우 씨와 윤씨 형제자매 간 갈등이 배후에 있다고 한다. 납북(拉北) 위기에다 당치 않는 여러 루머에 시달리며 살아 왔던 그녀의 삶, 마지막 단계까지 왜 이런 시련이 닥치는가. 천주교 신자(세례명 데레사)인 그녀를 하느님은 왜 그렇게 만든 것일까? 이 땅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하나 둘 이렇게 스러져 가는 것이 참으로 슬프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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