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칼럼] 사라진 완행열차, 계속되는 장애인들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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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칼럼] 사라진 완행열차, 계속되는 장애인들의 투쟁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1.03.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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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개통되어 2000년까지 운행했던 비둘기호 열차. 비들기호는 완행열차로 많은 이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다. 사진=KTV
1967년 개통되어 2000년까지 운행했던 비둘기호 열차. 비들기호는 완행열차로 많은 이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다. 사진=KTV

볼펜을 팔러 다닌다,
가다가 졸고 졸다가 가는 완행열차.

“‘도와주세요, 듣지 못하는 농아입니다.”
눈물 몇 방을 가볍게 찍은 글귀
명찰처럼 목에 걸고
수화를 허공에 풀어놓는 여자

몇몇은 눈을 감고,
주머니의 잔돈을 뒤지고,
끌끌 혀를 차고,

아직은 젊은 그녀가 볼펜을 팔러 다닌다.
땀 흘릴 노동을 받아주지 않는 사회
원망하듯 화장은 지우고
허름하게 
옷도 고쳐 입고서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 1990년 말에 썼던 글 중의 일부다. 기차를 실물로 처음 본 것은 나이가 들어서이다. 섬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기차를 볼 기회가 없었다. 어렸을 때 기차하면 ‘뿌우-’하는 기적소리와 증기를 내뿜는 모습이 전부였다. 

성년이 되어 서울로 올라왔고, 기차를 탈 기회가 생겼다. 기차를 탄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서울역으로 갔다. 완행열차인 비둘기호 표를 끊었다. 그래도 기차를 탄다는 생각에 좋았다. 

기차에 올라선 순간 생각해오던 낭만은 깨져 버렸다. 빈 좌석을 둘러싼 쟁탈전이 치열했고, 왁자지껄 음식을 나누어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계란이나  땅콩 등 군것질감을 파는 상인이 비집고 지나갔다. 급행열차를 보내기 위해 멎은 기차는 움직일 줄 몰랐다. 멎어 있는 기차, 붐비는 객실 문을 열고 중년의 여자가 들어왔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외모였다. 

객실로 들어온 그는 객석의 사람들에게, 서 있는 승객들에게 종이와 볼펜 한 자루를 함께 내밀었다.나에게도 다가왔다. 내민 종이에는 듣지 못하는 ‘농인이고 남편이 죽어 생계가 어렵다, 취업을 곳이 없어서 볼펜을 팔러 다닌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손짓을 하였다. 수어를 하는 것이고, 볼펜을 사달라는 요구라고 느낌으로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얼떨결에 볼펜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볼펜 값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중 가격의 5배가 넘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어를 할 줄도 몰랐고, 집어 든 볼펜을 반납할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다고 위안하며 볼펜 값을 지불했다.

그 후 우연치 않게 수어를 배우게 되었다. 농인들과도 어울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집에서는 대화가 안 되어 겉돌았다. 받아주는 회사가 없어서 막노동이나 노점을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직업 없이 떠도는 농인들도 있었다. 그들을 통하여 기차에서 만났던 농인이 사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25년 전과 같은 판매행위는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장애인 복지도 많이 발전했다. 장애인 관련 많은 법률이 만들어지거나 개선되었다. 장애인 정책도 확대되었으며, 장애인에 대한 지원과 서비스도 많이 늘었다. 편의시설이 개선되고 인식도 좋아져 사회활동을 하는 장애인들도 많이 늘어났다.

비둘기호는 2000년 11월 14일 운행이 중단되었다. 그 후 빠르고 편리한 기차들이 나왔다. 2004년 4월 KTX(Korea Train Express)가 개통하면서 고속철도를 운영하는 국가가 되었다. 완행열차로 14시간을 가야했던 서울과 부산 간 운행 시간도 이제는 2시간대로 줄어들었다. 

기차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고, 장애인 복지도 좋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장애인들이 집회를 한다. 완행열차에서 만났던 이들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외치고 있다. 외적으로는 장애인 복지가 성장했지만 장애인들에 대한 인권 개선이나 인간으로서 삶을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4월 20일은 정부가 정한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단체에서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탈시설지원법 제정, 장애인 복지예산 확대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완행열차가 사라진 현재, 장애인들에게 여전히 굼뜬 장애인 정책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장애인의 날을 맞으며 고민해 보아야 한다. 
 
※2008년 ‘에이블뉴스’에 필자가 썼던 글의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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