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에도, 희생에도 또다시 잠자는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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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에도, 희생에도 또다시 잠자는 '차별금지법'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1.04.1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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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없어, 보수 기독교계 반대 여전
국회 손 놓는 사이 김기홍 변희수 등 사망 "차별금지법은 생존 요구"
'사회적 합의 필요' 논리에 "인권은 비타협적, 차별은 합의 사항 아니다"
지난 8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포괄적 차별금지법 연내 입법 촉구 기자회견'. 사진=뉴시스
지난 8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포괄적 차별금지법 연내 입법 촉구 기자회견'.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지난해 6월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1년이 되어가는 현 시점에도 여전히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묻혀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의견을 냈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은 있어야한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통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현실은 여전히 차별금지법 통과는 커녕 추진조차 못하고 있으며 그 시간동안 차별 사례와 함께 희생자까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또 직접차별은 물론 간접차별도 차별로 규정했으며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는 물론 차별의 표시, 조장 광고 행위 등도 차별로 규정해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계는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옹호하고 이를 비판하는 목사들을 처벌하는 법'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차별금지법 통과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보수 시민단체들도 이 부분을 들며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역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반발이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한 기독교 선교단체가 유튜브를 통해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공공장소에서 '예수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복음 전도는 물론 성경 말씀을 지킬 수 없게 된다"면서 차별금지법이 공공장소에서 전도를 못하게 하고 전도하면 처벌을 내릴 것이라는 내용의 광고를 선보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때 국회에서 '성적 지향'이나 '종교' 등을 빼고 논의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차별금지법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비판 속에 묻혀졌다. 일례로 지난해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추진했던 차별금지법에는 차별행위에 대한 벌칙조항이 삭제되고 '종교'를 차별 예외조항으로 규정해 조계종으로부터 "종교간 갈등과 증오범죄를 부추기는 매우 위험한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성적 지향', '종교 자유' 등을 거론하며 차별금지법 반대 여론이 일어나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국회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차별행위가 계속해서 공개되고 이로 인한 희생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성소수자인 김기홍 활동가와 성전환을 이유로 군대에서 강제로 전역당한 변희수 하사가 잇달아 사망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지난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의 혐오발언, 청년 후보들의 벽보 훼손 등이 연달아 발생하는 등 범죄로까지 발전하면서 '차별금지법이 곧 생존'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정의당, 기본소득당, 노동당, 녹색당, 미래당, 진보당 등 진보정당들은 국회 본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차별금지법은 생존의 요구"라며 차별금지법의 연내 입법을 촉구했다. 이들은 "직장에서, 학교에서, 각종 시설에서 차별 한 번 안 당해본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침묵을 강요당했다. 사회는 우리를 침묵에 가두고 차별은 없다는 듯 굴었다. 그러나 차별은 한 번도 멈춘 적 없다. 차별은 이 세계가 굴러가는 방식 그 자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차별에 대한 합의를 승인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차별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이로 인해 미국 내 한국인들이 차별을 당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코로나19로 인해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지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서 많은 이들이 '내가 차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법안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보궐선거에서 20대가 정부 여당에 등을 돌린 것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8일 회견에서 "차별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력이다. 우리는 이 폭력으로부터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한다. 누구보다 앞서서 시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켜야할 정치는 지금까지 비겁하게 그 의무를 외면해왔다"면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지만 인권은 비타협적인 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차별은 어떤 경우에도 합의할 수 없다. 사회적 합의라는 알량한 핑계 뒤에 숨어 자기 기득권을 지키는 비겁한 정치적 선택을 합리화하는 행태를 이제는 멈춰야한다"고 밝혔다. SW

ld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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