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위로의 말, 기분 나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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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화 박사 펀 스피치 칼럼] 위로의 말, 기분 나쁠 수도 있어요
  • 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 승인 2021.05.1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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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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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김재화 언론학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19세기부터 전해지고 있는 유머로 이야기를 시작하죠. 부잣집에 불이 났습니다. 다리 아래 거적집에서 사는 거지 부자가 이걸 보고 있다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부 “아들아, 우린 얼마나 행복하냐! 집이 없으니 불날 염려를 안 하고 살 수가 있잖아?”자 “그러네요! 제가 훌륭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여기까진 웃을 일입니다.

불로 재산 다 날리고 쫄딱 망한 부자가 거지를 만나게 됐다고 합시다.
부자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당신이 부럽소이다!”이 말 들은 거지가 “하하하! 그렇죠?! 앞으론 당신도 근심걱정에서 벗어나려면 나처럼 빈털터리로 사시오.”라 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분명히 이럽니다. “누굴 놀리나?! 내가 거지라고 이런 막말을 해도 돼?! 에이, 기분 잡쳤네. 거지를 그만 두든가 말든가 해야지...”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 고독을 느끼는 정서를 '부럽다'고 해봅시다. 외로움이 얼마나 괴로운 심리상태입니까. 아마도 그 말에 웃어주며 반기는 ‘외로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혹시 외로움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다면 그걸 방법으로 설명해줄 일입니다. ‘얼마나 힘드냐? 내가 해줄 일이 뭐 없을까?’로 함께 동참해줘야 할 겁니다.  
잠시나마 외로움을 잊도록 웃기는 이야기를 재미지게 해준다, 굿 처방!!

다시 말해 ‘나도 외로우면 좋겠다’라 하는 것은 나는 행복이 펄펄 넘쳐 주체를 못할 지경이고, 외로움 따위는 한가한 사람에게 오는 일시적 무료감 정도이지 그게 무슨 대수이냐 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낙방 입시생에게 “비싼 학비 들어가지 않으니 돈 굳어 좋겠다”라 하거나 대학교육무용론이랍시고 복잡한 이론 들먹거리는 것, 이거 아니. 아니 되옵니다.

사기로 돈을 뜯겼다, 어디 투자한 돈이 다 날라 갔다... 했을 때, 그 사람 위로한답시고 “더 큰 돈 잃은 사람도 수없이 많아. 잊어버려!”, “니 잘못도 좀 있어서 그리 된 거라 자성하는 기회로 삼아!”라 하는 것도 정작 듣는 이는 유쾌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돈이 크고 작은, 많고 적은 기준은 액수로 정하지 못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재도전할 사람 같으면 무조건 너 잘못이라며 말리기만 할 게 아니라 정확한 성공사례를 들려주는 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서울대 병원의 김범석 교수 글 읽으며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말에 능수능란한 사람이라도 난치병에 걸려 고생하는 환자 당사자나 가족들에게 괴로운 기분이 싹 거치게 해준 걸 결코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더군요. “쉽고도 간단한 위로의 방식은 오직 이겁니다. 침묵!”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는 주위에서 명약이라며 이래라 저래라 권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때로는 정반대의 이론도 난무합니다. 그런 말 듣기가 참 거북하다고 하니 내가 의사나 부자, 지혜가나 심지어 신(神)일지라도 책임지지도 않을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침묵이 가장 낫답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인기가 많은데요, 잘 들어보세요. 절반 가량은 무슨 복잡한 묘안이 없습니다. 그저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입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에게 ‘그 나이까지 살았으니 다행’, ‘그 상황에서 살아나긴 힘들었을 것이니, 잊어.’ 이런 말 하면 정말 안 됩니다.

작년에 세상 떠난 동생이 아직도 매일매일 그립습니다. 간단히 “참 슬프겠다”라 해주는 말에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SW

erobian20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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