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송 대표 입에 '브레이크'만 있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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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송 대표 입에 '브레이크'만 있었어도…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1.06.1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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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엑셀레이터'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뉴시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엑셀레이터'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광주 철거건물 붕괴참사 관련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엑셀레이터'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송 대표는 17일 오후 광주 학동 건축물 붕괴사고 대책 당정협의 모두발언에서 "바로 그 버스정류장만 아니었다 할지라도 운전자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뭐가 무너지면 엑셀레이터만 조금 밟았어도 사실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인데 하필 버스정류장 앞에 이런 공사현장이 되어있으니 그게 정확히 시간대가 맞아서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발언의 속내는 5층 건물 해체 작업을 하면서 제대로된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대형 참사가 벌어진데 대한 안타까움이었겠지만 '운전자'와 '엑셀레이터' 발언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먼저 야당이 즉각 반응했다. 참사 책임을 버스운전자 개인에게 돌렸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광주 붕괴 참사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받는 2차 가해나 다름없는 망언"이라면서 "가슴 아픈 참사의 책임을 애꿎은 피해자에게 전가하지 말라"고 했고,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참담하다. 절망이다. 집권당 대표의 문제인식이 이 정도 수준이냐"고 지적했다. 

여 대표는 또 "불법 다단계 하청구조가 만든 구조적 참사를 두고 시내버스 운전자를 탓할 생각을 어찌 상상해내나. 당장 희생자 유족과 광주시민, 국민들께 사죄하라"고 말했다. 

네티즌들도 "'광주시장이 안전에 더 신경썼어도'가 맞지 않나" "2차 가해다. 그 분도 피해자인데 왜 죄책감을 심어주나" "잔인한 표현이다. 버스기사에 사과하라"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또 자신을 시내버스 기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사고난 버스가 현대버스인데 현대버스는 앞 뒷문 안 닫히면 엑셀이 안 밟힌다. 버스가 무슨 승용차도 아니고 말도 안되는 소릴 하신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송 대표는 "제 말에서 '엑셀' 대목만 키운 악의적 언론 참사"라며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그는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버스정류장이 없었다면, 그래서 버스가 바로 그 시간에 정차하고 있지만 않았다면, 혹시 버스가 사고현장을 지나더라도 이상한 조짐이 보였으면 운전기사는 본능적으로 승객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을 것이란 제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회의를 취재하던 어떤 기자는 제가 드린 말씀 중 일부를 잘라내 기사를 송고했다. '엑셀레이터만 조금 밟았어도'라는 대목만 키웠다"고 덧붙였다. 

송 대표의 해명을 듣고 나서도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송 대표의 말처럼 발언의 취지와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애초에 그 발언에서 '운전자'와 '엑셀레이터'만 뺐어도 될일이다. 

'엑셀레이터' 발언은 분명히 송 대표 입에서 나온 말이고, 회의 이후 더불어민주당 공보국이 당 홈페이지 논평·브리핑 게시판에 공개한 내용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송 대표는 자신의 입장을 전하면서 "제 본의와는 전혀 다른 오보였어도 민주당을 믿고 울분을 풀었던 분들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모르겠다. 언론의 오보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민주당 대표가 되겠다"면서 "호남의 아들인 송영길이 그런 정도로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이 대목에도 물음표가 남는다. 호남의 아들? 광주시민들의 믿음과 지지만 받으면 된다는 뜻인가. 송 대표의 이번 발언으로 상처를 받은 것은 광주시민 뿐만이 아니다. 살고 있는 지역과 상관없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국민들, 정치와 상관없이 이번 참사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국민 전체다.   

또 하나,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송 대표의 입을 타고 나온 설화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앞서 2010년 11월 북한 연평고 포격 도발 당시 불에 탄 소주병을 들고 "이거 진짜 폭탄주네"라고 말했고,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당일에는 "포(砲)로 폭발하지 않은 게 어디냐"고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한국 외교관의 동성 직원 성추행 의혹과 관련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우리는 그냥 같은 남자끼지 배도 한번씩 툭툭 치고, 엉덩이도 한번 치고 그랬다는 건데"라고 말했고, 지난 5월에는 기러기 가족을 언급하며 "혼자 사는 남편이 술 먹다가 혼자 돌아가신 분도 있고, 또 여자는 (외국) 가서 바람 나서 가정이 깨진 곳도 있다"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한편, 이날 송 대표는 '엑셀레이터'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택시를 몰았던 자신의 과거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젊은 시절 택시 몰면서 택시노조 사무국장을 했었고, 운전으로 밥을 벌고 젖먹이 애를 키웠다. 운전하시는 분들의 사명감을 일반인들보다 조금은 더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제가 다른 의미를 섞었겠느냐"고 말했다. 

이제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다. 오늘은 기자가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한 마디 해야겠다.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었다면,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됐다"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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