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배의 말하는 사진] '내용'을 담는 그릇, '형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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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배의 말하는 사진] '내용'을 담는 그릇, '형식'에 대하여
  • 이보배 기자
  • 승인 2021.06.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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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냄. 또는 그렇게 그려 낸 형상. '사진'의 사전적 정의 입니다.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생긴 이후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는데요. 가끔 피사체 외에 의도치 않은 배경이나 사물이 찍힌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의도한 것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매개로 다양한 정보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보배의 말하는 사진' 지금 시작합니다. <편집자주>

기자 기준으로 '내용'과 '형식'을 모두 갖춘 유쾌한 기념일 케익과 꽃다발. 사진=이보배 기자
기자 기준으로 '내용'과 '형식'을 모두 갖춘 유쾌한 기념일 케익과 꽃다발. 사진=이보배 기자

[시사주간=이보배 기자] 뜻 모를 사진에 당황하셨다고요? 그게 바로 제 코너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얼마 전 저와 남편이 기념일을 맞았는데요. 결혼한 지 8년이 지나고 보니 매년 기념일을 챙기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됐습니다. 

신혼 초에는 여행을 가고, 서로 선물도 하고 뭔가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요.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다보니 같이 저녁식사 한 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올해는 사진 속 주먹만 한 케이크와 손바닥만 한 꽃다발로 기념일을 챙겼는데요. 독자분들 눈에는 어떻게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내용'과 '형식'을 모두 갖췄다는 생각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여러분은 '내용'과 '형식'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결과적으로 볼 때 둘 다 중요한 것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요즘날 우리사회에는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은 것처럼요.   

반대로 저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분명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 입니다. 형식은 '필요조건'이고 내용까지 갖춰야 '충분조건'이 될 수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무엇을 전달하는지 보다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독일 철학자 헤겔이 쓴 저서 '대논리학'에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철학자 칸트는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고 말했죠. 무슨 내용이든 형식이라는 그릇에 담아내지 못하면 좋은 진심이라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저는 형식과 내용이 부조화스러운 문자 한 통을 받고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당시 저는 인터넷·신청 여부를 놓고 여러 통신사, OTT 업체와 상담을 진행했는데요. 유독 한 업체에서 타사를 비방하면서까지 자사 가입을 강요하기에 불쾌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마지막 한 줄에 '상담사 OOO'이라고 이름 석 자가 있었더라면 진심이 정말 '진심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사진=이보배 기자

사진 속 메시지가 통화를 종료하고 업체로부터 받은 메시지인데요. 시작은 좋았습니다. 실제 불쾌했던 마음이 녹아들었으니까요. 그런데 마지막 한 줄, 상담사 이름 석 자도 없는 마무리가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해당 메시지가 매뉴얼에 정해진 멘트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크겠죠. 그래도 저와 상담했던 분의 이름 석 자가 있었더라면, 설령 정해진 멘트라 해도 그 분의 진심이라고 느꼈을 겁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소중한 내용과 진심을 담아내는 그릇이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용도에 어울리는 그릇에 음식이 담겼을 때 훨씬 먹음직스러운 것처럼 형식이 갖춰진 내용이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형식'은 일종의 '예의'라고도 생각하는데요. 장례식 조문 시에는 검은 옷을 입고, 이사한 뒤에는 이웃들에게 인사차 떡을 돌리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내용이 형식을 만들기도 하고, 형식이 내용을 만들기도 합니다. 두 가지 모두가 잘 갖춰졌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하지만 상대방에 따라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SW

lbb@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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