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 입증한 '백자사발지석'에 무슨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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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 입증한 '백자사발지석'에 무슨 내용이?
  • 이민정 기자
  • 승인 2021.09.2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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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전주교구, 유해 진정성 보고회 개최
순교자 유해 발굴 배경·성과·검증과정 등 설명
위쪽부 복자 윤지충 바오로의 묘소에서 나온 백자사발 지석·아래쪽 복자 권상연 야고보의 묘소에서 나온 백자사발 지석 모습. 사진=천주교 전주교구
위쪽부 복자 윤지충 바오로의 묘소에서 나온 백자사발 지석·아래쪽 복자 권상연 야고보의 묘소에서 나온 백자사발 지석 모습. 사진=천주교 전주교구

[시사주간=이민정 기자] 최근 전북 완주군 초남이성지에서 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신유박해 순교자인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230여년 만에 발견된 가운데 유해와 함께 수습된 백자사발 지석에 대한 내용이 24일 공개됐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이날 천주교 전주교구 초남이성지 교리당 나눔의 집에서 세 순교자 유해 진정성에 관한 보고회를 열고 "지난 3월 11일 순교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순교자들의 인적사항이 적힌 백자사발 지석 등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장 업체는 8호기에서 백자제기 접시 2점을, 3호기·5호기에서는 순교자들로 추정되는 유해와 백자사발 지석을 각각 수습했다.

3호기와 5호기에는 각각 권상연·윤지충과 관련한 묵서명(죽은 사람의 이름이나 직위 등 관련 내용을 먹으로 쓴 글씨)이 발견돼 탄소연대 측정과 수종 분석을 통해 이들 묵서명에서 확인한 연대와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두 순교자의 묘에서 나온 지석에는 20자 안팎의 한자가 쓰여 있었는데, 이를 통해 망인의 매장 시점과 신분, 이름, 세례명, 출생연도, 본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먼저 윤지충의 지석에는 당시 성균관에서 치르는 과거시험 소과(小科)인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을 뜻하는 '成均生員(성균생원)', 윤지충을 높여 이르는 '尹公(윤공)'의 묘라는 의미의 '尹公之墓(윤공지묘)'가 적혀 있었다.

또 남자가 성인이 됐을 때 붙이는 또 다른 이름인 '禹庸(우용)'을 나타내는 '字禹庸(자우용)', 권상연의 묘가 왼쪽에 있다는 의미인 '權公墓在左(권공묘재좌)'라는 문구도 있었다.
 
권상연의 지석을 살펴보면 품계가 없는 일반 유학자를 칭하는 의미로 풀이되는 '學生(학생)'과, 복자 권상연을 높여 가리킨 '權公之墓(권공지묘)', 망인의 생전 이름이 상연이라는 '諱尙然(휘상연)', 성인 때 또 다른 이름이 景參(경삼)이라는 의미의 '字景參(자경삼)' 등이 포함됐다.

앞서 전주교구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교회가 정한 절차에 따라 순교자 유해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혹시 모를 불필요한 의혹이나 논란에 대비하고자 유물과 유해에 대한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이에 천주교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는 전 전북대학교 고고인류문화학과 윤덕향 교수·전북대 의과대학 해부학 송창호 교수 등과 함께 유해감식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묘지의 조성연대와 출토물의 연대가 윤지충·권상연이 순교한 1791년과 부합하고 무덤에서 출토된 백자사발 지석의 명문 내용이 윤지충·권상연의 인적사항과 각각 일치함을 확인했다.

또 유해에 조선시대 형벌의 하나인 능지처사의 흔적이 선명했으며, 부계확인검사를 통해서도 해남 윤씨와 안동 권씨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주교구는 전했다.

다만 윤지헌의 묘에서는 묵서명 대신 백자제기 접시가 확인됐다. 전주교구는 묵서명은 없지만, 3호기·5호기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전주교구는 세 순교자의 유해 발굴 기록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제3부로 나눠진 보고서는 순교자 묘소의 역사를 시작으로 유해발굴의 배경과 경과, 수습과정, 사실확인과 검증과정, 유해의 진정성 확증과정, 발굴 성과와 신앙적 의의 등을 담았다.
 
교구 치명자산성지의 김영수 헨리코 신부는 이날 "첫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복자 윤지헌의 묘지와 유해 발견이 지닌 교회사적 성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라며 "이러한 교회사적, 문화사적 성과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와 발전에 기여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첫 순교자들의 신앙 증거와 그 정신, 호남의 사도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초남이 신앙공동체의 믿음살이에 대한 연구와 신앙적인 성찰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쇄신하고 성화의 길을 찾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윤지충 바오로는 1784년 김범우의 집에서 '천주실의'와 '칠극'을 접하고, 고종사촌인 정약용 형제의 가르침으로 천주교에 입교했다.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운 '폐제분주' 사건을 일으키고 어머니의 장례를 천주교 예법으로 치렀다. 이 사건으로 1791년 전주 남문밖(전동성당 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윤지충과는 내외종간이고, 유항검과는 이종사촌인 권상연 야고보는 윤지충 바오로와 함께 조선교회에 내려진 제사금지령을 따르고자 신주를 불태우고, 천주교식 장례를 치렀다가 1791년 신해박해 때 전주 남문밖(전동성당 터)에서 참수됐다.

이들은 신앙을 지키고자 목숨을 내놓은 한국 천주교회 첫 순교자로 기록됐다.

윤지헌 프란치스코는 윤지충 바오로의 동생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능지처참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들 3인은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시복을 받아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에 올랐다. SW

lmj@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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