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리 죽음'의 나비효과, 목소리 내는 대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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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 죽음'의 나비효과, 목소리 내는 대중들
  • 황채원 기자
  • 승인 2022.01.2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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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동물학대 살상 행위 규탄 기자회견'에서 '와이어에 묶힌 말'의 고통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1일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동물학대 살상 행위 규탄 기자회견'에서 '와이어에 묶힌 말'의 고통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황채원 기자] '말 한 마리'의 죽음이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동물보호연대의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셀럽들도 잇달아 '동물 학대'를 비판하고 있다. '동물의 생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를 드러낸 사건, 바로 KBS <태종 이방원>의 '말 학대 논란'이다.

지난 20일 동물자유연대는 <태종 이방원>에서 이성계(김영철 분)의 낙마 장면 촬영 영상을 공개했다. 당시 드라마에서는 말의 몸체가 평지로부터 90도 가까이 들린 상태로 머리가 바닥에 곤두박질 치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됐고 이후 KBS 시청자 게시판에 '말의 안전 확인'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오던 중이였다.

동물자유연대는 "많은 분들이 우려한 대로 말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 말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강제로 넘어뜨린 것이 확인됐다. 와어이로 말을 강제로 넘어뜨려 말이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심하게 고꾸라졌고 함께 떨어진 배우 역시 부상이 의심될 만큼 위험한 방식으로 촬영했다"고 밝혔다.

연대는 이어 "촬영 직후 스태프들은 쓰러진 배우 상태 확인을 위해 급하게 달려갔지만 그 누구도 말 상태를 확인하는 이는 없었다. 말은 몸체가 뒤집히며 땅에 처박혔고 한참 동안 홀로 쓰러져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2022년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촬영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후 KBS는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뒤 말을 돌려보냈다"면서 "(하지만) 시청자들의 우려가 커져 건강상태를 다시 확인하니 촬영 뒤 1주일 후 말이 사망했다"고 말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사고를 방지하지 못하고 불행한 일이 벌어진 점 시청자들에게 거듭 사과 말씀드린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촬영 과정에서 제작진이 말 다리에 와이어를 묶은 뒤 성인 남자들이 뒤에서 말을 잡아당겨 일부러 넘어뜨리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것 자체만으로도 KBS의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리어 과거 드라마에서 말을 학대하는 촬영이 있었던 것이 알려지며 공분의 대상이 됐고 이는 연대 관계자, 회원을 넘어 동물을 사랑하는 일반 대중들까지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방송 촬영을 위해 안전과 생존을 위협당하는 동물의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방송 촬영을 위해 동물을 소품 취급하는 드라마 방영을 중지하고 처벌하라' 등의 청원이 올라왔고 <태종 이방원> 시청자 게시판에도 방송의 중단 및 폐지 요구가 이어졌다. 

심지어 주인공 이방원 역을 맡은 배우 주상욱의 개인 SNS에 '드라마 하차', '책임'을 요구하는 누리꾼까지 등장했고 이를 두고 '배우에게까지 책임을 무는 것은 가혹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KBS는 <태종 이방원>의 방영을 잠시 중단했다.

특히 연예인 등 셀럽들이 대중들과 함께 비판에 동조하면서 여론을 더 일으켰다. 배우 고소영은 동물자유연대 게시물을 자신의 SNS에 공유하며 '너무하다'는 글을 남겼고 배우 김효진은 "정말 끔찍하다. 촬영장에서 동물은 소품이 아닌 생명"이라고 일침을 가했으며 뮤지컬배우 배다해는 "어디에서든 이제는 동물학대가 없었으면 좋겠다"며 동물자유연대가 올린 국민 청원을 독려했다.

또 소프라노 조수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동물이 착취당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일은 법으로 강력히 처벌받아야한다"며 사후 대책을 강하게 촉구했다. 조수미는 "오래전 우리나라 TV에서 사극을 보려 하면 미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개, 고양이 장면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그 장면들이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해서 경악한 적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번 사건을 통해 동물의 방송 출연시 미디어방침(가이드 라인)이 만들어져서 모든 방송출연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순한 사고'이자 '관행'으로 생각했을 말 한 마리의 죽음이 몰고 온 나비효과는 앞에서 말한대로 '동물의 생존권'에 대한 우리의 달라진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모든 문제를 '관행이기에 어쩔 수 없다'라는 식으로 얼버부리려는 기성 세대들에게 큰 경종을 울리고 있다. 동물에 대한 달라진 시선을 보여준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이번 '이슈 피플'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다. SW

hcw@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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