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을 쓰는 것이 왕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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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을 쓰는 것이 왕의 도리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2.05.09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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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그림=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죄기조(罪己詔), 그 말부터 준엄하다. 이는 왕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일종의 반성문이다. 왕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고백한다는 것은 사실상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인조의 ‘삼전도’ 굴육만한 치욕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반성하는 예를 지킨 왕들이 많았다. 청나라 강희황제.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완전한 통일 국가 시대를 열었다는 이 위대한 사람도 오삼계가 난을 일으키자 태후를 찾아가 자신의 죄가 크다며 황제 자리를 내놓겠다고 말한다.

한무제. 유교를 중국의 국교로 받아들인 이 사람은 황태자 유거를 폐위시키고 자살로 몰고간 다음에야 황태자가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을 알았다. 그 후 한무제는 온 백성에게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는 윤대죄기조(輪臺罪己詔)를 내놓고 머리 숙였다.

그는 이렇게 참회했다. “짐이 즉위한 이후 망령되고 그릇된 일을 많이 저질러 천하의 백성들을 근심케 하고 고통스럽게 했다. 후회가 막급하다. 오늘 이후 백성을 힘들게 하고 국가의 재력을 낭비하는 일을 일체 중단하노라(朕即位以來, 所爲狂悖, 使天下愁苦, 不可追悔. 自今事有傷害百姓, 糜費天下者, 悉罢之).”

북송의 정치가로 왕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았던 사마광은 한무제의 죄기조에 대해 “한무제와 진시황은 닮은 점이 많았다. 두사람 모두 큰 공적을 세웠지만, 집권 후반기에 나라의 운명을 끝으로 몰아 넣었다. 하지만 한나라는 진나라처럼 멸망의 길을 가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진시황은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반면, 한무제는 늦었지만 이를 뉘우치고 고쳤기 때문이다. 백성들 조차 이를 행하기 쉽지 않은데 천하를 주재하는 황제가 이를 행하였으니 얼마나 대단한가”라면서 추겨세웠다.

한나라 재상 동중서의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현실에 적용한 것은 정치설인데 이는 재이설(災異說)로 집약된다. 재이설은 재난과 괴이한 일로 드러난 하늘의 뜻을 살펴서 왕 스스로 반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왕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내 탓이오’하고 뉘우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절대선인양 으쓰대고 과오는 회피하거나 셀프사면에다 비리가 드러날까봐 수사권을 박탈하는 등 훼방을 놓는 왕이라면 과연 ‘하늘은 무어라’ 말할까.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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