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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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 없는 세상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2.10.28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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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박 수령 천위성. 이미지=수호지 중
양산박 두령 천위성. 이미지=수호지 중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어린 시절 《삼국지》나 《수호지》를 읽을 때마다 나중에 커서 중국에 가면 반드시 양산박(梁山泊)을 가봐야지 했다. 삼국지 무대인 정저우(鄭州)·뤄양(洛陽)·시안(西安) 등에도 가보고 싶었으나 무슨 까닭인지 양산박이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다.

양산박은 산둥성에 위치하고 있는데 광활한 호수와 습지대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고 했다. 《수호지》에서는 이 지역은 ‘8백리 수향(水鄕)’이라고 불렸다고 했다. 가슴 뛸 만한 전경이다. 그곳에서 송강이며 노지심이며 임충 등 108명의 의리를 느끼고 싶었다.

몇 년 전 마침내 공자의 땅인 곡부를 방문하면서 양산박을 가게 됐다. 그러나 그 곳에 도착한 순간, 허탈감에 빠졌다. 광활하다는 늪지대와 호수는 어디로 가고 없고 달랑 관광용 빈 배만 놓여 있는 모습이라니. 게다가 가을 땡볕은 어찌 그리 가열차게 내리쬐던지 숨이 턱턱 막혔다. 이 지역은 대부분 논밭으로 변해 풍광이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소득이라면 산 정상에 있는 취의청(聚義廳)을 가본 것이다. 이곳은 의리로 맺은 곳이다. 사람들은 양산박 도적을 의군(義君)이라 불렀다. 누군가는 호걸이라 부르기도 했다. 평가가 어떻든 이들의 의리 만큼은 빛난다. 의리를 삶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나이들 세계에서는 이보다 더 한 가치가 없다. 죄가 없으면서도 죄인이 된 이들의 의협심 혹은 충성심은 아름답다 못해 처절하다.

의는 상대를 믿지 못하는 데에서는 결코 생겨날 수 없다. 그것은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와 같으며(金蘭之交),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일 정도로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것(肝膽相照)이며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교우관계(斷金之交)다. 취의청이 그렇고 도원결의(桃園結義)가 그렇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믿음으로써 효력을 발휘한다.

최근에 “의리? 이 세계엔 없다”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의 말이 화제를 낳고 있다. 그는 “제가 마음을 다친 게 있다. 저는 진짜 형들인 줄로 생각했다. 그렇게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럴 아무런 이유가 없었구나’ 싶어서 마음이 평화롭다”고 했다.

이는 이재명 열린우리당 대표를 향한 원망이다.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 봤다고 했다. 이 대표는 10년 이상 곁에서 봉직한 유씨를 측근이 아니라며 일부러 깎아 내렸다.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 게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부하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유사 이래 많은 왕과 우두머리들이 이런 반발로 인해 망조가 들었다.

명예와 아름다운 절의(節義)는 혼자 독차지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채근담》에 담겨져 있는 이 말은 섬뜩하다. 모든 사람이 얻고 싶어 하는 이 두 가지는 결코 혼자 다 가질 수 없다. 독차지 하려 하면 반드시 원성이 뒤따르며 큰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명예와 절의는 측근에게 조금씩 나눠줘야 한다. 그러면 그것들은 오히려 더 크게 돌아온다. 입안에는 꿀이 있고 뱃속에 칼이 든 사람(口蜜腹劍)은 한때는 성할지 몰라도 곧 배가 찢어진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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