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반려견미용 자격취득의 길을 연 박선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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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반려견미용 자격취득의 길을 연 박선희씨
  • 김철환 활동가
  • 승인 2022.11.02 08:0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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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장애인단체들이 청각장애인 반려견 미용자격 취득 제한 폐지를 국가인권위원회 에 요구하고 있다. 사진=김철환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장애인단체들이 청각장애인 반려견 미용자격 취득 제한 폐지를 국가인권위원회 에 요구하고 있다. 사진=김철환

[시사주간=김철환 활동가지난해 3월, 필자가 근무하던 장애인단체로 차별을 받았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당사자의 지인이 대신 연락을 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고, 너무 충격이 커서 대신 연락한다는 것이었다. 민원의 요지는 반려견 미용(스타일리스트) 실기시험장에 갔는데 장애인이라고 안 된다며 쫓겨났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박선희(45)씨는 청각장애인이다. 

청인(듣는 사람)으로 살다가 큰아이를 낳은 후부터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청력이 너무 안 좋아 보청기를 착용해야 했다. 한쪽만 착용하다 결국 두 쪽 다 착용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져 보청기조차 큰 도움이 안 되었다. 결국 중증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다. 청인으로 살아왔기에 음성언어가 필요해 지난해 인공와우 수술을 했다.

자신의 가게에서 반려견 미용을 하고 있는 박선희씨. 사진=박선희
자신의 가게에서 반려견 미용을 하고 있는 박선희씨. 사진=박선희

박선희씨는 20여 년을 웨딩 메이크업과 올림머리를 했다. 이 분야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청력이 나빠지다 보니 상대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간간이 입 모양을 보고 상대의 의사를 파악했었는데 코로나19로 마스크 착용이 일반화되면서 이마저도 어려웠다.

‘청각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하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반려견 미용이었다. 

박선희씨는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입양 후 5년이 넘는 동안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미용을 했다. 반려견 미용실에도 가본 적이 없다. 예쁘게 관리한다고 주변에서 칭찬해주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반려견 미용이라는 직업이다. 

웨딩 관련 일은 고객과 대화가 많다. 요구사항을 들어주어야 하고 변경되는 내용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듣기 어려운 박선희씨에게 이것이 고역이다. 하지만 반려견 미용은 고객과 간단한 상담을 마친 이후부터는 반려견과 교감만 잘하면 된다.

박선희씨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반려견과 교감이 더 잘 된다고 했다. 그리고 평소 손재주가 있다고 칭찬도 듣고 있던 터라 반려견 미용에 자신감이 생겼다. 도전해보기로 했다. 반려견 미용 자격시험인 1차 필기시험을 한 번에 붙었다.

하지만 2차 실기시험 접수를 하고, 시험장에 들어선 날 좌절하고 말았다. 시험장에서 신분증을 확인하던 감독관이 박선희씨 장애인등록증을 보더니 ‘시험을 응시하실 수 없다.’라면서 퇴장시켜 버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1차 시험을 통과했고, 반려견 미용 실기에 자신이 있어 2차 시험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격증이 나오면 번듯하게 가게를 차려 자녀들 앞에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가 컸는데, 꿈이 산산조각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반려견 미용 학원에서 청각에 장애가 있음에도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에 도와주려 했었다. 일부러 마스크를 내려 수업내용을 이야기 해주고 반복해서 알려주는 등 배려를 해주었다. 필기시험장애서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박선희씨가 청각장애인인 것을 알고는 감독관이 불편이 없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박선희씨는 좌절을 넘어 억울했다. 시험을 위해 부단히 애썼던 시간, 배움의 과정에서 청각장애로 인하여 받았던 고충들, 자녀들 앞에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려 애썼던 시간을 생각하며 돌아서는 그의 눈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고, 언론과 장애인단체에 연락했다. 다행히 국가인권위원회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애인 단체인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에서 (사)한국애견협회에 항의를 하는 한편 협회를 관리 감독하는 중앙 정부에 시험 과정에 장애인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개선을 요구해 나갔다. 기자회견을 하는 등 언론에 부당함도 알려나갔다. 

이러한 노력이 어우러져 청각장애인 시험응시 제한 규정이 없어졌다. 박선희씨는 실기시험을 다시 치르고, 자격증을 취득한 후 미용실을 냈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어 불편함은 있다. 그래도 듣기 어렵다고 말하면 손님들이 바로 마스크를 내려 요구사항을 이야기하고, 다시 방문할 때는 먼저 마스크를 내려 예약상황 등을 말한다. 이러한 배려 덕분에 큰 어려움이 없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제법 단골들도 생겼다.

당당하게 전문인으로 살아가는 박선희씨는 말한다. “‘청각장애’는 듣지 못한다는 불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으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세요.~”

박선희씨가 겪었던 좌절들. 우리 사회의 청각장애인들이 사회 곳곳에서 마주하는 일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개선된 반려견 미용 자격취득 제한 폐지는 뜻이 깊다. 

사실 미국 등에서는 반려견 미용 자격 취득에 청각장애인을 제한하지 않는다. 일반 미용 자격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청각장애인은 할 수 없다.’는 편견 때문이다. 즉, 박선희씨로 인하여 이러한 편견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여 청각장애인들이 반려견 미용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어렵게 연 길, 반려견 미용이라는 직종에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도전하길 박선희씨는 기대하고 있다. SW

k6469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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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주 2022-11-06 20:53:23
감동, 잘 일고 갑니다

감사 2022-11-06 20:52:25
청각장애인인데 희망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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