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장수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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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장수의 갈림길
  • 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
  • 승인 2022.12.20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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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피크는 90세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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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박명윤 논설위원/서울대 보건학 박사우리나라 보건의료분야 큰 스승이신 권이혁 박사님은 생전에 “내 인생의 피크는 90세였다”고 말씀하시면서, 후학들에게 90세까지는 열심히 활동하라고 격려하셨다. 1923년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하신 우강(又岡) 권이혁(權彛赫) 박사님은 서울대학교 총장, 문교부 장관, 보건사회부 장관, 환경처 장관, 한국과학기술단제총연합회 회장, 대한보건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셨으며, 지난 2020년 7월 12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권이혁 박사님은 2006년부터 에세이집을 발간하기 시작하여 90세가 넘어서도 매년 ‘우강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2017년에 발간된 에세이 13집(367쪽)의 책 제목은 <장수(長壽)를 즐긴다>였다. 본문 중에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장수를 갈망한다. 장수는 좋기는 하지만 장수만으로 만족해서는 의미가 없으며, 보다 중요한 것은 장수를 즐기는 일이다. 여기에는 취미나 습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적었다. 

102세 철학자 김형석(金亨錫) 교수님은 100년을 살아보니 “난 65-90세 때 제일 좋았다”고 하신다. 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님은 1920년 4월 23일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운산금광에서 일하면서 미국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를 접해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다. 평양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일본의 명문사립대 조치대학교(Sophia University) 철학과에 진학하여 1944년에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조치대학은 기독교 예수회(Jesuit)가 세운 학교이다. 

김형석 교수님은 인생은 세 단계이며, 30세까지 공부하고 60세까지 일하는 두 단계에 은퇴 후에도 공부와 일을 놓지 말고 젊게 살라고 조언한다. 은퇴 후 별다른 성장 없이 놀면서 늙어서는 안 되므로 취미이던 봉사던 은퇴 후에도 일과 공부를 계속하여야 한다. 학교 공부만 공부가 아니며, 독서도 공부다. 또한 직장 일만 일이 아니며, 봉사도 취미생활도 일이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시 배우는 능력이다. 

김형석 교수님은 학문적 업적과 더불어 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1961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교수로 떠나기 전에 발간한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는 수필집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로 인해 귀국한 김형석 교수는 출판업계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엄청난 러브콜을 받게 되었으며, 이후 30년 이상 매년 1권꼴로 꾸준히 책을 냈다. 그가 집필한 수필은 기독교적 실존주의를 배경으로 현대의 인간 조건을 추구하여 부드럽고 시적인 문장으로 엮어 독자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장수국가인 일본인의 평균수명(平均壽命)은 2020년 기준 남성이 81.64세, 여성은 87.74세다. 하지만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생활을 꾸릴 수 있는 건강수명(健康壽命)은 남성이 72.68세, 여성은 75.38세가 된다. 이에 마지막 남은여생 9-12년 정도는 질병 등으로 불편하거나 누군가의 간병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따라서 건강수명이 늘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장수를 한들 수명만 연장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에서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전체의 29.1%이며, 후기(後期)고령자라고 불리는 75세 이상도 15%를 넘어섰다. 이에 이들의 삶과 고민을 다룬 콘텐트가 문화계를 장악하고 있다. 최근 NHK에서 방송한 드라마 ‘76세 기리코의 범죄일기’는 가족과 친구 모두 떠나 혼자가 된 76세 여성 기리코가 남은 생을 ‘숙식이 제공되는’ 감옥에서 보내려고 범죄를 계획하는 이야기다. 하라다 히카의 소설이 원작이다. 

만약 당신의 나이가 이미 건강수명을 넘어 80세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사는 게 바람직할까. 최근 일본의 고령자 전문 정신과 의사 와다 히데키(和田秀樹)는 <80세의 벽>이란 책을 출판하여 현재 일본에서 비소설분야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으며, 저자가 쓴 다른 책 <70세가 노화의 갈림길>은 베스트셀러 8위에 올랐다. 지금 일본의 키워드는 ‘나이 듦’과 ‘돈’이다. 문고책 1위는 절약하는 가족을 그린 소설 ‘3천엔의 사용법’이다. 

와다 히데키는 1960년 오사카 출생으로 도쿄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했다. 1988년부터 고령자 전문 종합병원인 요쿠후카이병원 정신과에서 근무했다. 이후 도쿄대학교부속병원 신경정신과 조수, 미국 칼메닝거정신의학학교 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국제의료복지대학대학원 교수(임상심리학 전공), 기와사키코병원 정신과 고문, 히토쓰바시대학 경제학부 비상근 교수를 겸임하면서 항노화와 상담 전문 와다히데키클리닉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노인 정신의학 분야에 종사하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와다 히데키 원장은 현재 노인 문제와 심리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로 TV와 라디오 출연, 단행본 집필을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 혼자 행복해지는 연습, 인생이 심플해지는 고민의 기술, 어른을 위한 공부법, 인내하므로 노화한다, 노인성 우울증, 70세가 노화의 갈림길, 80세의 벽 등이 있다.

‘80세의 벽’을 넘으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20년이 기다리고 있으나, 80세를 목전에 두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며 간병 받는 처지가 되는 사람도 많다. 80세의 벽은 높고 두꺼우나 벽을 넘는 방법은 있다. 우선 싫은 걸 억지로 참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한편 80세부터의 인생은 70대와는 전혀 다르다. 체력도 기력도 70대와 다르며, 여기저기 몸의 불편함도 많아진다. 

80세가 넘어 활기 있게 살고 있는 사람은 그 자체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먹고 싶다는 것은 몸이 요구하는 것이며, 영양부족은 노화를 촉진시킨다. 무엇인가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뇌가 젊다는 증거이며, 성욕은 지극히 자연스런 욕구다. 다만 하고 싶은 거 하라지만 어디까지나 스스로 컨터롤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실행해야 한다. 노쇠(老衰)는 병이 아니라 조금씩 몸이 약해져 죽음에 이르는 자연스런 과정이다. 

인생 100세 시대에 우리는 ‘늙음’을 두 시기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70대 때 ‘늙음과 싸우는 시기’와 80대 이후의 ‘늙음을 받아들이는 시기’ 두 가지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늙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80대 이후 반드시 찾아온다. 70대 무렵까지는 현역 때와 비교해 그다지 변화 없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나 80대를 넘기면 대부분 다 늙어간다. 이에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늙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면 결국 좌절감만 찾아온다. 

일본 혼슈(本州) 내륙지방에 위치한 나가노현(長野縣, Nagano Prefecture)은 인구가 약 2백만명이며, 일본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중 남녀 모두 평균수명이 1위다. 장수 국가 일본 내에서도 최고 장수지역이다. 산간 지역이 많아 지역 주민이 산길을 잘 걸어 하체가 단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고령자의 높은 취업률이 결정적인 이유라는 해석이다. 나가노현 65세 이상 남성 취업률은 42%로 전국 1위이며, 여성도 22%로 1위다. 

일에 종사하는 것은 건강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가노현의 고령자 1인당 의료비가 전국 최저 수준이며, 이는 나이를 먹어도 건강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계속 일에 종사하는 것이 나이가 들어도 활동량을 떨어뜨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신체나 뇌 노화를 늦추는 것에 좋은 영향을 미쳐 건강한 고령자로 지내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다만 일하는 방식은 돈이나 효율만을 추구하는 근로 방식에서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살려, 누군가를 도와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와다 히데키 원장은 밖으로 나가 일하는 것이 운동 기능, 뇌 기능 노화를 지연시켜 수명 연장 효과를 낸다가 말한다. 노동이 노화를 늦추는 최고 방법이다. 저자는 할 일이 없어도 집에서 눕지 말고 일부러라도 외출하라고 권고한다. 밖에 나가서 햇볕 쬐는 습관이 사람을 젊게 한다. 정신 노화를 지연시키려면, 지인들과 만나 소통하는 것을 즐기고 집에서도 SNS를 통해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좋다. 인생 후반을 활동적으로 보내면, 돌봄 없이 자립하는 생활을 영위할 확률이 높아진다. 

요즘 병원은 신장내과, 호흡기내과, 소화기내과 등 세부적으로 나뉘어 전문의사가 따로 있다. 이에 해당 장기 위주로 치료를 받다가 보면 통합적인 건강을 놓칠 수 있으므로 특정 장기 기능 문제 개선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의사들은 수치를 정상 범위로 낮추려고 하지만, 수치에 집착하지 말고 삶의 질을 위해 유연하게 대응하면 건강한 80대를 맞을 수 있다. 

건강검진에 대한 생각도 검진에서 정상 판정은 건강한 사람의 평균치이므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70대가 되면 혈압, 혈당, 적혈구 수 등 5-6개 필수검사만 하고, 심장과 뇌 검진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을 오래 살게 해주는 의료 기술과 건강을 유지해주는 기술은 다르다. 마음이 젊고 여러 가지 일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고령자에게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다소 높거나, 몸무게가 과체중인 경우에 더 오래 산다는 연구들이 있다. 혈압과 혈당을 낮추는 약물은 동맥경화(動脈硬化)를 방지하고, 심혈관 질환 위험을 낮추지만 대개 이런 약들은 신체에 나른함을 불러오고, 활력을 떨어뜨린다. 고령자가 콜레스테롤을 낮추려고 식사를 제한하거나, 약물을 과다하게 복용하면 면역력이 저하되고 장수에 도움이 안 된다. 

70세가 건강 장수의 갈림길 이므로 60대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늙을수록 고기를 먹어라, △뭘 하든 은퇴하지 마라, △일하는 것이 노화를 늦추는 최고 보약이다, △햇빛 쬐는 습관이 사람을 젊게 한다, △눕지 말고 움직여라, △일부러 외출해라, △SNS를 즐겨라, △지인과 토론하라, △느슨한 운동을 습관화해라, △혈압과 혈당치를 과하게 조절할 필요는 없다. 

와다 히데키 원장은 “인생 최후 활동기인 70대를 건강한 몸과 활력으로 보내면 80대, 90대에도 노화 지연 상태가 이어진다”며 “더욱 좋은 몸으로 70세에 진입하려면 40-50대부터 건강 생활을 습관화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건강한 생활습관은 평생을 통하여 중요하지만, 특히 중장년기에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롱런(long run) 하려면 롱런(long learn) 해야 하며, 특히 격변 시대엔 계속 배워야 한다. 배움의 세 기둥은 많이 보고, 공부하고, 겪는 것이다.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사는 법을 배워라” “우리는 어려워서 많은 것을 하지 않지만, 우리가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Lucius Seneca)의 말이다. SW

pmy@sisa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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