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위기 남일 아냐"···설곳 잃은 '농장동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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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 위기 남일 아냐"···설곳 잃은 '농장동물' 수의사
  • 황영화 기자
  • 승인 2023.04.0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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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주 처치·투여·수술 등 자가진료"
"농장동물 수의사 진료 사실상 전무"
"반려동물 쏠림…수의사법 정비해야"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황영화 기자] 농가에 만연한 자가진료로 소·돼지·닭·오리 등 농장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농장동물 수의사는 국민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인 가축의 질병을 관리하는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농장주의 자가진료를 막을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5일 수의계에 따르면 농장동물 수의사는 농장주의 처치·투여·수술 등 자가진료로 진료량이 급감하면서 주업무인 농장동물 진료가 아닌 국가 방역사업인 브루셀라병·우결핵병(인수공통전염병)채혈 검사나 구제역 예방 접종 의존도가 높은 실정이다.

수의계 관계자는 "농장주가 소, 돼지, 가금류에 수액을 놓을 뿐 아니라 찢어진 상처를 봉합하고 항생제 등 약물도 수의사의 진료 없이 마음대로 투여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를 계기로 진료량이 급감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위기가 수면 위로 본격적으로 떠오른 것처럼, 농장동물 수의사도 진료 자체가 사실상 전무해 위기의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농장동물은 동물의료 분야에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특성상 정부에서도 반려동물과 달리 진료비에 부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브루셀라병·우결핵병 채혈 검사 비용도 국가·지자체 예산으로 지급되고 있다. 소 50두 미만 농가의 경우 구제역 백신 접종 접종비도 지원 받고 있다.

문제는 수의사법상 농가의 자가진료를 막을 근거가 없어 현장에서 자리를 잡은 농장동물 수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17년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으로 동물 소유주의 자가진료는 법적으로 금지됐지만 소, 돼지, 가금류 등 가축은 제외됐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은 "농장주가 농장동물을 수술해도 법 체계가 미비해 수의사법 위반이 아니고, 동물용 의약품도 수의사를 부르지 않고 마음대로 살 수 있다"면서 "수의사들이 활동 영역이 줄다보니 농장동물 분야를 기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장동물 수의사 처방대상 동물용 의약품은 16%가량에 불과하다. 이조차 '약사법' 예외 조항에 따라 농장주가 약국에서 대부분 구입할 수 있다. 농장동물 수의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다 보니 동물용 의약품 오남용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반려동물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연봉이 상대적으로 낮고 농장동물에 채이고 물리는 등 안전사고와 인수공통전염병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도 수의사가 농장동물 진료를 기피하는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허 회장은 "국가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 전공의들이 소아과가 아닌 다른 진료과로 가듯, 정부가 부가세를 부가하지 않을 정도로 농장동물을 필수 동물의료로 여기지만 처우가 좋지 않다보니 수의사들이 반려동물 분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임상 현장의 수의사 10명 중 9명 가량은 반려동물을 진료하고 있다. 반면 농장동물 분야 기피는 심화되면서 농장동물 수의사의 평균 연령은 60세에 육박하고 있다.

허 회장은 "국가재난형 가축 전염병도 국가와 농장 사이에서 관리돼 농장동물 병원의 역할이 사라졌다"면서 "국가가 농장동물 수의사의 역할을 인정하고 농장동물 병원 중심으로 가축의 질병을 컨트롤해야 한다"고 말했다. SW

hy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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