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연설회가 '미신고 집회'? 경찰의 애매한 판단

청년녹색당 정당연설회 '정치적 발언' 이유로 해산 종용 '집시법 위반' 녹색당 "대사관 앞이라는 이유만으로 막은 듯, 청년들 정치활동 부당하게 탄압" 경찰 "공관 내 안녕 책임질 의무, 순수한 정당연설회라 보기 어려워"

2020-01-28     임동현 기자
지난 26일 중국대사관 앞 인도에서 열린 청년녹색당 정당연설회를 경찰이 '미신고 집회'로 규정하고 해산을 종용하고 있다. 사진=서울대녹색당 페이스북 캡처

[시사주간=임동현 기자] 최근 경찰이 청년녹색당의 정당연설회를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로 강제해산을 시킨 것이 밝혀졌다. 녹색당은 '경찰이 부당하게 청년들의 정치활동을 탄압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찰은 안전상의 이유 등을 들며 해산이 불가피했음을 밝히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청년녹색당, 서울대녹색당은 명동 중국대사관 앞 인도에서 '홍콩 민주항쟁 연대' 정당연설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박도형 서울대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이상현 중랑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있었으며 이들은 "녹색당은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홍콩의 민주주의를 요청하는 시민들에 대한 국가폭력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들이 연설을 하는 동안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온 경찰들이 이들을 중심으로 스크럼을 짜기 시작했고 경비과장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적용한다'면서 해산을 종용했다. 참석자들은 "신고의 의무가 없는 정당연설회"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구호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주장을 묵살했다.

박도형 공동위원장은 2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청년녹색당 당원들이 녹색당의 정책을 알리면서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도 전하는 연설회였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경찰도 처음에는 '정당법으로는 가능하지만 이 곳 말고 길 건너에서 하라'고 했다. 그들도 '정당법 상으로는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페이스북 등의 공지를 경찰들에게 보여주니 수긍하는 모습도 보여줬는데 갑자기 경비과장이 오더니 '미신고 집회'라고 규정하고 연설회를 막았다. 경찰들도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막은 것이다"라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대사관 근방 100m 이내에서는 집회를 할 수 없고 대사관에 위협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경찰들이 지켜야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있었던 곳은 무엇을 던지는 등 위협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고 1인 시위가 진행됐던 곳이었다. 우리는 그저 연설만 했다. 정당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조직인데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정당연설회가 아닌 미신고 집회라고 단정짓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마이크에 대고 경비과장에게 이유를 물어보니까 '마이크 썼다'면서 해산에 불응했다고 2차 경고까지 했다. 집회 내용에 문제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텐데 장소 하나 때문에 막은 것 같다"고 밝혔다.

연설회를 막은 경찰 측은 "비엔나 협약에 따라 경찰은 공관 내의 안녕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면서 "이 행사는 통상적이고 순수한 정당 연설회가 아니며 정당 연설회를 빙자한 미신고 집회다. 집시법 6조 1항을 위배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으며 이후 입장은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정당법 제37조 1항에는 '정당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활동의 자유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고 2항에서는 '정당이 특정 정당이나 공직선거의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도 포함)를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함이 없이 자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인쇄물, 시설물, 광고 등을 이용하여 홍보하는 행위와 당원을 모집하기 위한 활동(호별방문 제외)은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1년에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정당연설회의 신고 의무가 없어졌다. 

문제는 정당연설회인지 옥외집회인지의 여부를 경찰이 자치적으로 결정하다보니 앞에서처럼 경찰 내에서도 입장이 달라 혼돈이 발생하고 경찰 책임자의 '독단'으로 불법 여부가 결정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경찰이 '미신고 집회'로 결정을 내리고 '해산 종용'으로 계속 밀어붙일 경우 처벌을 받으면 안 되는 연설회 참석자들은 결국 연설회를 마치거나 자리를 옮겨 계속 진행해야하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선거 차량 등 상징적인 기구 등이 없이 마이크만 들고 정책을 알리는 경우 '미신고 집회'이자 '정치 집회'라는 경찰의 판단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박도형 위원장은 "대사관 주변에서 집회를 못하도록 하는 것은 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정당연설회를 하지 말라는 것은 법 규정에 없다. 1인 시위도 가능한 곳인데 정당연설회를 금지할 수는 없고 그렇기에 미신고 집회라고 멋대로 결정하고 해산을 종용하고 있는 것 같다. 정당연설회를 금지된 장소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어야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당연설회라는 명목으로 구호를 외치거나 시위를 조장하는 발언 등이 나올 경우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의견도 있어 '정당연설회'와 '옥외집회'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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