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장백현에 제발 탈북자 좀 오지 마세요”

2020-03-12     양승진 북한 전문기자
장백현에서 본 혜산시 민둥산. 사진=양승진 북한 전문기자

[시사주간=양승진 북한 전문기자] 지난해 초 백두산에 올랐다가 양강도 혜산시가 보고 싶어 장백조선족자치현(장백현)에 간 일이 있다.

송강하에 여장을 풀고 숙소 주인에게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버스와 택시가 있는데 버스를 타고 가면 장백현에 머무르는 시간이 불과 얼마 안 돼 택시를 타기로 했다. 물론 버스를 타고 가도 한국인이 있으면 초소에서 검문을 오래한다는 소리를 들어 괜히 남에게 불편을 주느니 택시 타는 게 맞는 듯했다.

백두산 남파 가는 갈림 길에 예전에는 초소가 하나 있었는데 남파를 개방하면서 너무 불편해 이를 없앴다. 그 이후 장백현까지는 초소가 하나 밖에 없다. 도로에 다져진 눈길을 달려 초소에 도착하니 초병 2명이 검문을 했다. 여권을 주고 택시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러잖아도 검문을 깐깐하게 한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혹시 잘못되는 건 아닌지 영 불안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택시에 앉아 있으니 속에서 천불이 나 문을 열고 나가 동태를 살피니 초병은 안에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25분쯤 됐을까 초병하나가 오더니 번역기를 돌려 어제 어디에서 잤느냐고 물었다. 연변 한 호텔에 머물렀다고 하자 언제 중국에 왔느냐” “장백현에 왜 가느냐” “언제 나올거냐등캐 물었다. 차근차근 대답했더니 또 여권을 들고 들어갔다 나와서는 가라고 손짓했다.

30분간 검문을 당하니 한 일도 없이 녹초가 됐다. 그러면서 탈북자들이 검문을 피해 에둘러 넘는다는 산자락을 보니 아득하기만 했다.

사실 장백현은 혜산시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어 초입인 삼거리부터 통상구 국경다리까지 걷기 좋게 데크를 깔아 놓았다. 들어가는 입구에 관광 장백현이란 문구를 보더라도 혜산을 보는 게 아예 관광 상품이 돼버렸다. 장백현 어디에서든 북한의 민둥산이 보여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느 쪽이 북한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검문을 깐깐하게 하냐고 물었더니 탈북자 때문이란 소리를 했다. 탈북이 한창 심할 때는 장백현 사람들이 무서워서 산에 못갈 정도로 산에 가면 웅크린 사람이 그렇게 많았단다. 해질녘이 되면 군 트럭 2대에 탈북자들을 매일 실어 날랐을 정도라고 했다.

남한에서 생활하고 있는 탈북자 중 유독 장백현을 통해 나온 이들이 많아 그때 그분들이었을 듯싶다.

문제는 가족이나 고향이 그리운 이들이 한국 여권을 들고 장백현에 가는데 검문을 하면 탈북자인지 아닌지 일일이 대조를 하는 통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소리였다. 과거 하나원 직원이 명단을 팔아먹는 바람에 이곳 초소에도 그게 있다는 얘기에 소름이 확 돋았다.

장백현에서 만난 한 조선족 지인은 한국 가면 제발 탈북자들한테 말 좀 전해달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장백현에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만약에 오면 잡혀간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도 탈북자들이 잡혀갔다며 혀를 끌끌 찼다.

압록강 건너 혜산의 땅집들을 보고 다시 송강하로 돌아 나오는 내내 그 말이 귀에 맴 돌았다.

장백현에 제발 탈북자 좀 오지 마세요.”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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