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테러에 흔들리는 프랑스 ‘라이시테·똘레랑스’

2020-11-02     현지용 기자
사진=로이터

[시사주간=현지용 기자] 프랑스 사회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로 다시금 공포에 휩싸이면서 정교분리적 세속주의의 ‘라이시테(laïcité)’, 관용 정신인 ‘똘레랑스(tolerance)’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달 16일 프랑스 이블린에서 체첸 출신 18세 무슬림 난민 청년이 중학교 교사 1명을 참수해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주간지 샤를리 엡도가 발행한 이슬람교 선지자 무함마드 풍자 만화를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는 이유다. 2주도 채 안된 동월 29일 프랑스 니스에서는 튀니지계 이민자인 21세 남성이 니스 노트르담 성당을 습격해 3명을 살해하고 이 중 60대 여성 한 명을 참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슬람 율법에서 동물의 목을 가르는 도축 방법 ‘다바하(Dhabihah)’가 일반적임을 감안한다면, 두 테러범이 저지른 참수 테러는 이슬람권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치욕스러운 죽음이자 처형 방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알카에다, IS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는 프로파간다로 인질·포로 참수형 장면을 영상화·배포해 공포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악명 높다.

이번 테러는 정치적으로는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과정에서 프랑스가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고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던 과정에서 촉발됐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올해 8월 레바논 베이루트 항구 폭발사고 당시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이슬람 근본주의 견제와 중동권 세속주의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여기에 이슬람 포퓰리즘적 성향인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아제르바이잔 지원에 대해 마크롱이 직접적으로 비판하면서 프랑스 세속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간의 갈등이 깊어지던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갈등의 수면화가 이번 잇따른 2차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참수 테러, ‘종교 테러’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테러의 타겟이 이를 증명한다. 교사 참수 사건에서 해당 교사가 교육 자료로 사용한 만평은 무함마드를 풍자·조롱하는 만평으로 2015년 12명이 총기난사로 숨진 샤를리 엡도 테러사건에서 이슬람권이 강하게 반발한 출판물이기도 하다. 니스 테러 피해자들도 테러범이 성당 가톨릭 신자를 테러 목표로 잡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특정성을 가진다.

사회·문화적으로는 프랑스식 세속주의인 라이시테와 톨레랑스가 이슬람 극단주의로 존립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는 ‘앙시앵 레짐(구체제)’과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 정교분리와 세속주의에 대해 강경하게 규제·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바탕에서 참수 테러가 벌어져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정교분리법이 대폭 강화된 법안을 다음 달 내놓을 것이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라이시테도 프랑스의 관용 정신인 똘레랑스와 충돌한다. 프랑스는 16세기 신교·구교 간 종교전쟁을 거치면서 폭력을 배제하고 토론으로 의견을 모은다는 똘레랑스 정신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라이시테가 강조하는 세속주의-정교분리가 톨레랑스 정신이 강조하는 개인의 자유와 빈번히 부딪치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가 20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지 시대, 21세기 중동 위기를 거치면서 난민 유입, 이로 인한 사회문제 증가는 빈부격차, 극단적 이슬람주의 확산과 만나 테러 문제로 불길처럼 번지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들을 사례 삼아 프랑스 사회 내 적응하지 못한 무슬림 난민·이민자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동화돼 개별적 테러를 저지르는 ‘외로운 늑대(Lone Wolf)’가 기승을 부릴 것이란 전망도 커지는 모양새다.

ISIS 준동 당시 발생한 샤를리 엡도 테러 이래 2015년 11월 파리 테러, 2016년 니스 트럭테러, 루앙 성당 테러가 화기·자동차 등을 이용했다면, 이번 참수 테러의 양상은 마크롱의 정교분리법 강화 선언처럼 보안 강화를 넘어선 다른 수단과 조치를 요구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 시민사회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해 전과 다른 방식의 대안 제시를 요구받는 시점에 놓인다는 것이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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