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웃어라, 그리고 영리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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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웃어라, 그리고 영리해져라
  • 시사주간
  • 승인 2016.03.0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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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황영화기자]
"지속가능한 변화는,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 양보를 거부한 과로에 지친 여성에게서, 시의회로 진출할 길을 찾은 현명한 카메라 가게 주인에게서, 대의를 위해 단식을 하고 자기다운 소박한 옷을걸친 말라깽이 대머리 인도인에게서 온다. 로자 파크스, 하비 밀크, 간디 같은 영웅들이 존경받는 것은, 그들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 행동은 우리 중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들이 역사에 남은 이유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용기를 갖고 행동에 옮겼으며, 옳은 일을 현명하게 행했기 때문이다."(287쪽)

"공포의 시절, 우리 세르비아인들은 두려움의 가장 큰 적수가 웃음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큰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로 들어가는 친구를 안심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언지 생각해보라. 당신이 심각하게 굴면서 걱정하면 친구는 더 불안해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농담을 건네면 친구는 여유를 찾을 것이고, 미소도 지을 것이다. 같은 원리가 운동에도 적용된다."(26쪽)

스르자 포포비치 세르비아 출신의 사회운동가와 매슈 밀러가 쓴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이 번역 출간됐다. 비폭력주의 운동은 인권이나 사회정의, 환경 문제, 더 나은 교육을 위한 투쟁 같은 큰 이슈에서부터 지역사회의 불공정 규제나 불합리함 같은 작은 이슈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바꿔나갈 여러 가지 방법을 논한 책이다.

독재권력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는다. 감시에 대한 두려움,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 체포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인류에게는 의문의 여지없이 정말 효과적인 무기가 하나 있다. 바로 웃음이다. 웃음 공격은 아무도 막아내지 못한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웃음과 재미는 언제나 마음속 깊이 새겨진 두려움을 몰아내고 사람들을 거리로, 광장으로 이끈다.

세르비아에서는 매일 머리에 조화를 꽂는 밀로셰비치의 아내를 풍자하기 위해 수십 마리 칠면조의 머리에 하얀 꽃을 꽂아 거리에 풀어놓았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을 반대하는 집회를 당국의 불허하자 반푸틴 구호를 든 '장난감 인형'이 시위를 주도하고, 시리아에서는 '자유'와 '이제 그만' 등이 적힌 탁구공 수천 개가 도시 골목과 거리로 쏟아져나왔으며, 반정부 가요가 담긴 USB스피커를 더러운 쓰레기통에 넣어 도시 곳곳에서 하루종일 노래가 흐르도록 했다.

농담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권력자들은 공권력을 이용해 '칠면조를 잡으러 뛰어다니거나' '장난감을 비롯한 무생물에 의한 시위 금지'를 공포하거나(최근 우리 경찰도 홀로그램 시위도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탁구공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시민들 중 누구도 다치거나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공권력은 더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고, 유머에 진지함으로 대하는 권력자들은 조롱거리가 됐다.

포포비치는 인권이나 자유 같은 커다란 가치를 위한 싸움부터 시작할 것이 아니라, 뭔가 사소한 것, 적절한 것, 그러면서도 성공적일 수 있는 것, 그것 때문에 죽거나 심한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직장생활과 가족 문제, 놓치지 말아야 할 TV드라마와 반송해야 할 물품들을 신경쓰기에도 하루가 빠듯하다. 게다가 현실 정치는 염증이 날 만큼 진부하고, 불의에 맞서는 싸움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싸움'인 듯하다.

그럼에도 진보진영은 정말 쉽지 않은 목표, 예컨대 정의나 평등, 대안적 경제체제 구축 같은 커다란 이슈부터 내세운다. 소수의 각성한 시민들은 그러한 대의에 선뜻 동의할 것이나, 대부분은 그런 추상적 개념에는 관심을 갖기 어렵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동성애자 인권 운동가 하비 밀크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 데 실패를 거듭한 끝에, 샌프란시스코 주민들 대다수가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개똥 치우기'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 시의원이 됐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말에 귀기울인 덕에, 밀크는 주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삶의 질 문제가 그들의 영혼이 아니라 신발 밑창과 더 밀접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거의 모든 주민들이 전염병처럼 번지며 도시의 공원을 더럽히는 수거되지 않은 개똥을 최악의 골칫거리로 꼽았다. 공공의 적 일순위였다. 밀크는 이기는 싸움을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냉담한 이성애자 도시에서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개똥을 치우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필요한 것은 비닐봉지가 다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는 공약을 결과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비춰질 것이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의 말에는 모두가 귀기울일 것이었다."(65쪽)

포포비치는 성공적인 운동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에 도취되는 것만큼 편한 일은 없다고. 때문에 너무 일찍 승리를 선언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승리를 자축하며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 떠났을 때에도, 카메라가 꺼진 후에도 누군가는 남아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처음 계획한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승리를 선언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일을 마무리하는 것, 시작한 일을 제대로 끝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명심할 것은 독재자를 몰아냈다고 해서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승리의 최종적 선언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눈에 띄지 않지만 더 중요한 노력 끝에 이루어져야 한다.

저자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한 크고 작은 승리가 한 사회의 자부심을 이루는 것이라면, 반면에 '이길 수 없는' 싸움에는 아무도 함께하려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고 했다. "또한 개인적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시위에 참가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행동처럼 여겨진다. 불의와 부조리를 시민의 적극적 정치 참여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들이 그저 패배주의적 냉소로 이어지는 이유다."  문학동네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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